그가 남긴 모든 곡을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몇몇 곡은 삶을 관통하며, 플레이리스트의 공백기가 없다. 신해철을 상징하는 곡이라하면, 수많은 명곡들 중에서도 특히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를 뽑겠다. 때때로 보여지는 자기 모순적 발언들을 보며 왜 밑천 갉아먹으며 사서 고생을 할까싶었다. 하지만 온갖 비난의 목소리에도 흔들리지 않는 대쪽같은 소신만은 충분히 멋있었는데, 적어도 내 기억 속에 그는, 사회를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행동하는 지성인이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야성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비정상회담에서 그의 행복론을 듣고 많은 감명을 받았던게 불과 몇 년전이다. 그가 떠났따는 속보를 클릭하는 순간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유독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아마 저녁 8시경에 야구를 보다가 그의 부고 소식을 ..
친구는 일터로 출근을 하고, 아무런 계획 없는 나는 동네 산책에 나섰다. 여행을 가면 골목과 골목 사이의 삶을 살펴보는 것을 좋아한다. 길을 가다 외부에 주차된 멋진 G바겐 SUV를 보고는 무언가 이끌리듯 들어간 카페. 카페 이름은 Newbury였는데 타베로그를 찾아보니 업력이 벌써 20년 가까이 된 곳이었다. 버티는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겠지. 전체적으로 모던한 인테리어의 카페. 주인장이 외국에서 살다와서 차린 모양이다. 계속해서 영어로 분주하게 누군가 대화를 하는 모습. 토스트와 라떼는 평범한 맛이었지만, 워낙에 볕이 좋아 기분좋은 아침이었다.
초중고를 함께 나온, 친한 듯 친하지 않은 친구. 장충동에서 함께 잠시 산 적도 있고, 홍대 앞에 살 무렵엔 주말이면 다양한 고등학교 친구들이 아지트처럼 드나들었다. 졸업 후 남부럽지않은 직장에 다니다가 문득 일본어를 공부하겠다며 일본 워킹 홀리데이를 떠난다기에 당시엔 꽤나 의아해 했었다. 일본 여행의 목적은 사실 도쿄에서 고생하고 있던 이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미리 연락해두어 친구가 역까지 마중을 나왔다. 도쿄야 워낙에 부도심이 많이 발달해있지만, 기치조지가 힙스터들에게 유명한 것은 알고 있었다. 나름 우리 중엔 힙스터인지라, 기치조지 언저리에 사는 것 또한 그런 연유겠거니 했다. 친구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지로라멘이라는 라멘집이었는데, 도쿄에서는 나름 유명하다고 했다. 특징이라면 일반적인 돈코..
서초동은 우리 부부를 빼고는 비교적 생활 수준이 높으신 분들이 많이 거주하시는 관계로, 생활 물가도 여타 지역에 비하면 높은 편이다. 서초역에 있는 롯데마트조차 저렴하지가 않더라. 때문에 장을 볼 때는 코스트코를 주로 이용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막 나온 따끈한 빵을 포기할 수는 없기에, 주변을 둘러보다 찾은 맛집. 그 유명한 김영모 제과점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점심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바게트나 식빵같은 기본 빵은 거의 품절이다. 치아바타처럼 담백한 빵도 인기가 많다. 우리는 주로 치아바타나 바게트를 사먹는다. 동경제과학교를 나온 부부가 운영한다는데, 늘 친절하기에 갈 때마다 기분 좋아지는 빵집. 정직한 작은 빵집을 모토로 내건 빵집에서 늘 거리에 빵냄새가 은은히 퍼진다. 기본에 충실한..
고등학교 졸업 후 늘 만나면 술이나 먹었지 다같이 제대로 된 여행 한 번 가본 적 없다는 한 놈의 말에 모처럼 급조된 여행. 멀리 지방 울산, 세종에서 직장 생활하는 놈들이 빠지고, 육아로 바쁜 놈들이 빠지고, 차포 떼고 나니 4명만이 남았다. 코로나 때문에 4인 이상은 모일 수도 없으니 차라리 잘된 일이다. 어디를 갈까 이야기하다 만만한 포천으로 결정했다. 포천에서도 다들 한 번쯤은 가봐서 익숙한 백운계곡에서 막걸리에 고기나 구워먹고 오자고 의견이 일치했다. 부산에서 올라오는 한 놈이 수서역에서 합류하기로 해 수서역 이마트에서 장을 보고 출발. 1시간을 좀 넘게 달려 백운계곡에 도착했다. 우리가 잡은 곳은 선 오브 글램핑이란 글램핑장이었는데, 급히 잡은 곳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시설이 좋다고 보..
이사 후 짐정리를 하다가 문득. 먼지 쌓인 CD들을 보았다. 간혹 좋아하는 음악가의 CD를 한 두장 사모으는 수준이었지만, 이마저도 이제는 처치 곤란이다. 3천원을 간신히 모아 만화책을 산 후 포장 비닐을 뜯을 때의 설레임. 몇끼를 굶은 돈으로 신보 CD를 사서 첫 트랙을 들을 때의 즐거움. 모든게 부족했기 때문에 더 만족스러웠다. 예전에는 그래도 이백장은 넘었던 것 같은데 주변에 나눠주고, 또 어떤 것은 팔고하다보니 남은 게 그리 많지는 않다. 그 때 섵불리 팔아버린 CD 중에는 브로콜리 너마저 1집같은 지금은 구할 수도 없는 음반들도 꽤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 다시보니 몇곱절로 가격이 뛰었다. 힙합 CD들도 오버클래스의 콜라쥬같이 소장가치 있다 생각되는 것을 빼고는 일본으로 이민간 친구에게 몽땅 줘버..
지샥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익히 알 것이다. 지샥답지 않은 높은 판매가에도 한동안 구하기 힘들었다. 꽤나 오래 망설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54만원에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에 간신히 하나 남은 것을 업어왔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꽤나 많은 생채기가 났다. 3년간 고생이 많았나보다. 태양열로 충전이 되기에 따로 일상적 사용에서는 배터리 교체가 필요없고, 블루투스 연동이 가능해 스마트폰에서 시간 조정도 가능하다. 다양한 기능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반전액정과 메탈의 색상조합이다. 단점은 고무밴드의 붉은 연결부가 너무 약해서 조그만 충격에도 잘 부서진다는 점인데, AS비용이 만만치 않으니 주의해서 사용해야 한다. 밴드 교체비용으로 8만원 이상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풀메탈 밴드도 있..
스캇, 자이언트, GT, 벨로라인 등 입문급 브랜드의 다양한 하이브리드, 로드 자전거를 타봤지만, 결국 내 생활 반경에서는 유사 MTB가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혼은 제트스트림을 통해 처음 접해보았는데, 알면 알수록 더 매력적인 브랜드라는 생각이 든다. 잘 알지못했을 때는 대만 자전거가 아닌가 했는데, 알고보니 데이비드 혼의 대만계 미국인이 창업한 브랜드였다. 앞뒤 이름을 따 다혼. 제트스트림은 한동안 단종된 모양인데, 나혼자 산다에 이시언이 타고 나와 한 때 중고매물이 씨가 말랐다고 한다. 찾아보니 제트라는 이름으로 재발매되기는 하는 듯한데, 나 또한 꽤나 오래전 중고로 구매했었고, 당시에는 아마 70만원 정도 줬던 것 같다. 캠핑 장비와 함께 트렁크에 싣고 강원도 동해안을 달린 적도 있고..
이상국 시인의 라는 시에 보면 "마흔해가 넘도록/ 오징어 배를 가르는 사람들의 고향을 아는지"라는 구절이 있다. '아바이'순대에서 아바이는 할아버지의 함경도 방언이라고 했다. 6.25 때 피난민들이 쪽배를 타고 넘어왔는데, 속초에 터잡은 이유는 단지 고향이 가깝기 때문이란다. 하나 둘 그들이 사라진 지금까지도, 속초에는 겨울에도 아지랭이가 피어나는 듯, 실향의 정서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유튜브에서 오래 전 폐지된 예능프로그램 '짝'의 클립 영상을 봤다. '짝'은 짝짓기라는 포맷을 차치하고서라도 다양한 인간군상의 민낯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프로그램이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출연자는 짝에서도 레전드라 평가받는 애정촌 10기 남자 6호 형님으로, 언뜻 보기에도 인간미가 넘치다 못해 솟구치는 분이시다. 그 형님이 한 말씀 중 인상깊은 구절이 있다. 남자 6호의 직업은 소나 말과 같은 산업동물을 진료하는 대동물 수의사였는데, 인터뷰 곳곳에서 느껴지는 동물에 대한 애정과 직업적 소명의식 또한 감동적이었지만, 특히 경제논리를 언급한 대목에서는 동물과의 당시 내 상황과 관련해 특히 눈이 갔다. 요지는 이렇다. "수많은 가축들이 경제학적 논리에 의해 죽어갑니다. 애완동물과는 달리..
언젠가 강신주 교수가 라디오방송에서 멘토라는 인간들이 홀로서기를 방해하고 청춘을 착취한다'며, 오히려 '힐링보다 스탠딩이 필요한 시대'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아침에 자전거를 타며 라디오를 듣던 시절이었으니 아마도 손석희가 MBC에 있던 시절의 시선집중이 아니었나 싶다. 또 비슷한 맥락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김난도 교수의 책을 두고, '애들 아프게 한 게 누군데 그걸 또 처방전이랍시고 돈까지 받고서 팔아먹냐'는 변영주 감독의 인터뷰가 있기도 했다. 시대의 과도기였던 것 같다. 스님, 욕쟁이 할머니, 자연인, 센 언니 등 유행을 타고 다양한 개성의 자칭타칭 멘토들이 처방전을 판매했다. 그렇게나 스스로 멘토를 자청하던 이들이 이제 와서는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아볼 수가 없다. 지식의 밑천이 드..
오타루에서 하루를 묵을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사실 5박 6일의 짧은 여정 중 3일은 도쿄에서 일하고 있던 친구를 만나기 위해 빼두었기에 길을 서둘렀다. 오타루에서 30분 가량 다시 기타를 타고 삿포로로 갔다. 일본의 유명한 맛집들은 대개 대형 쇼핑몰의 식당가에 분점을 둔 경우가 많았는데, 삿포로 역사 내에도 웨이팅이 긴 맛집들이 꽤 있었다. 식도락은 여행의 묘미 중 하나이지만 나에게는 해당이 없는 얘기. 그나마 결혼하고 나서야 조금씩 바뀌는 중이다. 삿포로의 권역내 인구는 약 200만 정도이다. 인구밀도가 낮은 홋카이도에서 이런 대도시가 존재한다는 것은 인구가 밀집된 홋카이도 서남부를 제외하고는 아직도 개척되지 않은 땅이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삿포로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일본의 다른 여느 도시가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