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내가 본 사람 중에는 가장 농구 실력이 빼어났던 사람. 호승심이 강해서 사고도 많이 치고 다녔고, 한동안은 도박에 빠져 지내며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유독 코비 브라이언트를 좋아했던 형. 그렇게나 좋아하던 코비 브라이언트보다 먼저 세상을 뜰 줄이야. 소식을 듣고선 한동안 현실감이 없었다. 이런 저런 사연들로 요절한 지인들이 있었지만, 형처럼 가까운 이가 죽은 적은 처음이었다. 함께 가보자 했던 러커파크. 본고장의 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더 높이 뛸 수 있을거라나. 결국에는 나 혼자 가보았다. 형이 가장 좋아하던 코비 브라이언트가 헬기 사고로 죽은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20년의 새봄을 앞둔 겨울이었다. 이제는 코비도 형도 이 세상에 없다. 다가오는 봄에는 그 형이 잠든 창원 상복공..
아쉬움과 설레임이 병존하는, 연중 가장 시간이 빨리 흐르는 달. 여느 때 같았다면 송년의 소회로 술잔들을 채우곤 하였을 시기이지만, 그마저도 어렵게 되었다. 다시 거리의 사람들은 귀가는 빨라지고, 상인들의 주름은 더 깊게 패일 것이다. 12월에는 운동을 꼭 등록해야지. 또, 영어 공부를 꾸준히 다시 할 것이다. 대학생 시절부터 늘 다짐하지만 쉽지 않다. 올해 안에 관성을 붙여 내년에는 중단없이 계속 공부를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민법도 시간이 나는 틈틈히 볼 것이다. 살아가다보니 법률의 총체도, 공법의 토대도 어쩔 수 없이 사법이라는 생각. 한국일보 구독신청을 했다. 돌이켜보면 신문을 가장 열심히 읽었던 것은 고등학생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그 시절만큼 시간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꼭지라도 꼭 챙겨보아야..
인천 흉기 난동 사건과 관련해, 세간이 시끄럽다. 한 쪽에서는 출동경찰관 개인의 무능에서 비롯된 조직 구성원의 일탈을, 또 다른 한편에서는 경찰관의 적극적인 무기 사용을 꺼리게 만드는 사회적 시스템을 지적한다. 실탄은 커녕 공포탄도 발포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권총을 꺼내어 대치조차 하지 못하고 현장을 이탈한 이번 사건에서 왜 굳이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이야기나 나오는지는 의문이다. 차라리 여경 무용론은 일견 상황에라도 들어맞기에 논의의 필요성이나마 있어보였지만, 함께 출동한 19년차 베테랑 남경 또한 도대체 이해되지 않는 상황 대응을 한 것이 밝혀지자 이내 수그러들었다. 경찰 내부적으로는 무기사용으로 인한 면책규정을 신설함으로서, '주위 사정을 합리적으로 판단'한 적극적 무기 사용을 허용해달라는 취지의 주..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다(검찰청법 제4조). 변호사는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한다(변호사법 제1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헌법 제103조) 흔히들 법조 삼륜이라는 말을 한다. 판사, 검사, 변호사를 바퀴에 비유한 것인데, 공익을 대표하고, 인권을 옹호하며, 양심의 길을 따라 그 바퀴는 굴러간다. 가끔은 삐걱대기도 하지만 우리는 모두 믿고 있다. 결국 그 바퀴는 바른 길을 향해 갈 것이라는 것을. 대법원장이 구속된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다. 대법원장이 새파랗게 어린 후배 판사에게 영장 실질 심사를 받는 광경은, 참담하면서도 제헌 70돌을 넘은 우리 나라 법치의 성숙도를 보여주었다. 검사와 변호사에 대해서는 그간 국민들의 믿음이 그리 크지 ..
그 친구는 언제나 성실했다. 노력에 비해 성적이 잘 나오는 편은 아니었지만, 지치지 않고 늘 우직하게 공부했기에, 유독 우등생이 많았던 우리 학년에서도 그 친구는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다. 본디 좋은 머리를 타고났던, 최상위권 친구들 몇몇은 자기네의 몇곱절을 노력해도 늘 제자리 걸음인 그 친구를 비웃곤했다. 그 친구는 나태해지려 할 때마다 늘 모멸감을 되새김질하며 절치부심했다. 아마도 결과로써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위해 어금니를 꽉 깨물었으리라.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그 친구의 올곧은 성정은, 열등감을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게 하는 뿌리였다. 정글같던 사춘기 수컷들의 세계에서도 그 친구는 비뚫어지지도, 꺾이지도 않고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살았다. 하지만 유독 간이 작아 시험장..
한 번은 직장에 대한양궁협회 기술위원장이 강연을 온 적이 있다. 강연 주제는 '원칙을 지키는 삶'이었는데, 골자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당장의 손해를 가져올 수는 있을 지언정, 결국에는 모두에게 이득을 가져다준다는 것이었다. 강연 중 인상깊었던 이야기가, 바로 양궁 국가대표 최현주에 대한 이야기이다. 선발전에서는 최정상의 기량을 보여주었지만, 정작 올림픽을 앞두고는 깊은 슬럼프에 빠진 탓에, 일각에서 대표선발을 다시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한국 양궁 대표팀에 승선하는 것이 올림픽 금메달보다 어렵다는 사실은 이미 스포츠팬 사이에서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전국체전에서는 만점을 쏘아도 금메달을 따지 못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승선이 어려운만큼, 선발전에서 가장 잘 쏜 선수를 선발한다는 ..
생애 처음으로 제주도를 찾았던 것은, 고등학교 1학년 수학여행 때였다. 지금도 잘 이해되지 않는데, 막 고등학교에 올라와 적응에도 힘겹던 3월, 전교생이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 여행을 갔었다. 아는 얼굴 하나 없이 그저 적응에 힘겨웠던 때라, 별 감흥도 없었고, 정작 들렀던 곳이 소인국테마파크 같은 업체와 계약된 관광지 위주였기에 실로 실망스러웠다. 두번째 만난 제주는 처음과 또 달랐다. 대학교 1학년 때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통해 번 돈으로, 친구들과 일주일 정도 해안도로를 자전거로 일주했었다. 첫날 하루를 빼놓고는 일주일 내내 비가 와서 고생했었지만, 비가 오면 비가 오는대로 좋았던 기억이다. 생애 처음으로 내 손으로 계획한 장기여행이었다. 그 즈음해서 장마에 접어든다는 일기예보를 한 달전부터 접하고..
테크노크라트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이야기는 과거부터 주욱 나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약간은 결이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다. 과거에는 정책 결정 과정에 있어서의 테크노크라트의 영향력이 줄어든다는 의미로 쓰였다면, 이제는 아예 테크노크라트의 등용 그 자체를 거부하는 듯한 인사 정책 기조를 의미하는 것 같다. 대통령을 도와 국가의 정책을 총괄하는 비서실장 자리를 참여연대로 대표되는 시민 사회 출신이 독점한 것만 보아도 그렇고, 때때로 전혀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각료들을 장관으로 임명해 국무회의을 구성한 점도 그렇다. 단순히 낙하산, 코드, 보은 인사가 문제가 아니라, 전문성, 자질이 문제라는 말이다. 당장 생각나는 각료들만 해도 수두룩하다. 직전 국토부 장관은 환경 운동, 노동 운동가 출신의 시민 사회 출신이..
이사 후 짐정리를 하다가 문득. 먼지 쌓인 CD들을 보았다. 간혹 좋아하는 음악가의 CD를 한 두장 사모으는 수준이었지만, 이마저도 이제는 처치 곤란이다. 3천원을 간신히 모아 만화책을 산 후 포장 비닐을 뜯을 때의 설레임. 몇끼를 굶은 돈으로 신보 CD를 사서 첫 트랙을 들을 때의 즐거움. 모든게 부족했기 때문에 더 만족스러웠다. 예전에는 그래도 이백장은 넘었던 것 같은데 주변에 나눠주고, 또 어떤 것은 팔고하다보니 남은 게 그리 많지는 않다. 그 때 섵불리 팔아버린 CD 중에는 브로콜리 너마저 1집같은 지금은 구할 수도 없는 음반들도 꽤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 다시보니 몇곱절로 가격이 뛰었다. 힙합 CD들도 오버클래스의 콜라쥬같이 소장가치 있다 생각되는 것을 빼고는 일본으로 이민간 친구에게 몽땅 줘버..
유튜브에서 오래 전 폐지된 예능프로그램 '짝'의 클립 영상을 봤다. '짝'은 짝짓기라는 포맷을 차치하고서라도 다양한 인간군상의 민낯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프로그램이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출연자는 짝에서도 레전드라 평가받는 애정촌 10기 남자 6호 형님으로, 언뜻 보기에도 인간미가 넘치다 못해 솟구치는 분이시다. 그 형님이 한 말씀 중 인상깊은 구절이 있다. 남자 6호의 직업은 소나 말과 같은 산업동물을 진료하는 대동물 수의사였는데, 인터뷰 곳곳에서 느껴지는 동물에 대한 애정과 직업적 소명의식 또한 감동적이었지만, 특히 경제논리를 언급한 대목에서는 동물과의 당시 내 상황과 관련해 특히 눈이 갔다. 요지는 이렇다. "수많은 가축들이 경제학적 논리에 의해 죽어갑니다. 애완동물과는 달리..
언젠가 강신주 교수가 라디오방송에서 멘토라는 인간들이 홀로서기를 방해하고 청춘을 착취한다'며, 오히려 '힐링보다 스탠딩이 필요한 시대'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아침에 자전거를 타며 라디오를 듣던 시절이었으니 아마도 손석희가 MBC에 있던 시절의 시선집중이 아니었나 싶다. 또 비슷한 맥락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김난도 교수의 책을 두고, '애들 아프게 한 게 누군데 그걸 또 처방전이랍시고 돈까지 받고서 팔아먹냐'는 변영주 감독의 인터뷰가 있기도 했다. 시대의 과도기였던 것 같다. 스님, 욕쟁이 할머니, 자연인, 센 언니 등 유행을 타고 다양한 개성의 자칭타칭 멘토들이 처방전을 판매했다. 그렇게나 스스로 멘토를 자청하던 이들이 이제 와서는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아볼 수가 없다. 지식의 밑천이 드..
대학생 시절엔 꼬박꼬박 신문을 구독했었다. 열독했다면 지금보다 나은 삶을 일궈냈을까. 나는 말그대로 말꼭지만 주루룩 훑어보는 말그대로 얼치기 구독자였다. 내가 선택한 신문은 한국일보였는데, 그 당시 한국일보의 특징이라면 한 지면 내에서도 논조가 극과 극을 달릴 정도로 다양성이 공존했다는 것이다. 요즘도 그러냐하면 글쎄. 당시 오피니언 파트의 작은 지면을 빌어 정일근 시인의 '길 위에의 이야기'라는 에세이가 실렸었다. 주로 어느 철에 물메기의 맛이 좋더라하는 짧은 단상들이었는데, 한 날은 원양어선을 타는 젊은 시인 이재성군의 이야기가 실렸다. 정일근 시인은 내가 잘아는 우리 지역 대학의 국문학과 교수이고, 그 학과에는 내 고교동창인 이재성이라는 친구가 분명히 다니고 있던 참이었다. "갓 등단한 젊은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