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처음으로 제주도를 찾았던 것은, 고등학교 1학년 수학여행 때였다. 지금도 잘 이해되지 않는데, 막 고등학교에 올라와 적응에도 힘겹던 3월, 전교생이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 여행을 갔었다. 아는 얼굴 하나 없이 그저 적응에 힘겨웠던 때라, 별 감흥도 없었고, 정작 들렀던 곳이 소인국테마파크 같은 업체와 계약된 관광지 위주였기에 실로 실망스러웠다.
두번째 만난 제주는 처음과 또 달랐다. 대학교 1학년 때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통해 번 돈으로, 친구들과 일주일 정도 해안도로를 자전거로 일주했었다. 첫날 하루를 빼놓고는 일주일 내내 비가 와서 고생했었지만, 비가 오면 비가 오는대로 좋았던 기억이다. 생애 처음으로 내 손으로 계획한 장기여행이었다. 그 즈음해서 장마에 접어든다는 일기예보를 한 달전부터 접하고 있었지만, 날씨 따위는 고려하지도 않을만큼 그 때의 우리는 몸도 마음도 어렸다.
다시 제주도를 찾았던 것이 2010년 여름이었는데, 그 때는 제주도 출신 학교 선배의 별장에 묵으며 먹거리 위주의 여행을 했었다. 고기국수를 먹었고, 흑돼지가 유명하다는 숨은 맛집을 찾았었고, 제주동명시장에서 선배의 아버지께서 오래 전부터 안면을 트고 지내는 단골집에서 싱싱한 회를 먹었었다. 지금도 그 때의 수산시장의 시큼한 비린내가 생생한데, 그 때로부터 벌써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우리는 각자 생활전선에 뛰어들었고, 20대 중반이었던 그 형님들은 이제 불혹을 바라보고 있다.
2014년의 제주도 여행은 제주도를 한번도 가보지 않은 부모님에 대한 죄스러움에 선뜻 내가 먼저 모시고 가겠노라 제안했던 것이었다. 중국인의 투자이민 열풍이 불 때라, 가는 족족 중국인이 제주 토착민보다 더 많이 보였다. 성산읍 같은 경우는 정말로 중국어가 한국어보다 더 많이 들려왔는데, 이제 다시는 예전의 성산은 없을 듯 하여 서글픈 마음이 들었었다. 성산을 지키던 토착음식점들은 중국인을 상대로 하는 중국음식점들로 바뀌었고, 주차장은 중국인을 태운 관광버스로 가득했으며, 물가 또한 얼척이 없을 정도로 올랐었다. 숙소인 애월읍도 함덕해수욕장을 찾기 위해 들렀던 신입생 때와는 많이 변해있었는데, 변가 곳곳에는 게스트하우스가 들어서 있었고, 멀지 않은 곳에는 이효리가 별장을 지어 수많은 관광객이 그 곳을 찾는다하였다.
조용했던 애월읍도 이효리의 별장이 들어선 이후로는 전에 없이 부산스럽고, 성산같은 경우는 이곳이 중국인지 한국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럼에도 당시 제주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성산일출봉에서 우도를 바라보면, 중국인을 가득 태운 관광버스도, 셀 수 없이 많은 중국음식점도 모두 점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억겁의 세월을 성산읍의 해녀들과 함께 버텨온, 날 것 그대로의 제주만이 그제서야 내 눈에 들어왔다.
스페인으로 가자, 영국으로 가자 즐거운 상상을 하던 신혼 여행 계획은 코로나 인해 모두 틀어져버렸다.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찾은 제주는 신혼여행 때였다. 신혼 부부들이 유채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용두암을 찾아 해안에서 회 한점을 먹고, 관광버스들이 사라진 해안도로에는 자전거 여행객들이 모처럼 눈에 띄었다. 늘 제주도는 그 자리에 억겁의 세월을 간직한 채 그대로 있는데, 변하는 것은 그 곳을 찾는 사람이다.
변해야 할 것들이 있는 반면에, 변하지 않고 늘 그대로 머물러주었으면 하는 것들도 있다. 내게는 제주도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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