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양궁의 힘, 시상식 단상

한 번은 직장에 대한양궁협회 기술위원장이 강연을 온 적이 있다. 강연 주제는 '원칙을 지키는 삶'이었는데, 골자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당장의 손해를 가져올 수는 있을 지언정, 결국에는 모두에게 이득을 가져다준다는 것이었다.


강연 중 인상깊었던 이야기가, 바로 양궁 국가대표 최현주에 대한 이야기이다. 선발전에서는 최정상의 기량을 보여주었지만, 정작 올림픽을 앞두고는 깊은 슬럼프에 빠진 탓에, 일각에서 대표선발을 다시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원칙의 힘은 오히려 궁지에 몰렸을 때 빛을 발한다




한국 양궁 대표팀에 승선하는 것이 올림픽 금메달보다 어렵다는 사실은 이미 스포츠팬 사이에서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전국체전에서는 만점을 쏘아도 금메달을 따지 못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승선이 어려운만큼, 선발전에서 가장 잘 쏜 선수를 선발한다는 원칙에는 강력한 금반언이 적용된다.


이 때 대한양궁협회는 설사 금메달을 따지 못하더라도,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선발전에 대한 신뢰와 선수들의 사기를 제고시키고, 추후 유사사례 발생시 하나의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후 결과는 모두가 아는 데로다. 올림픽 결승 무대 가장 중요한 순간에서 최현정은 멋지게 10점 퍼레이드를 벌이며 한국 여자 양궁 국가대표팀이 단체전 금메달의 전통을 이어나가는데 일조했다.


이번 한국 남자 양궁 단체전의 경우 최연소와 최고령의 나이차가 21살이 난다. 이 또한 오직 대표선발전 당시의 기량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선수를 선발했던 데서 기인한 것이다.


런던 올림픽 2관왕에 빛나며 현재에도 현역 선수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장혜진이 해설 중 우스개소리로, 한국 양궁이 최강이라는 사실은 자신이 해설을 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느냐고 하였다. 이를 그저 농으로 허투루 넘겨서는 안된다. 승자도 패자도 모두 납득 가능한 이유는,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정의로우며 결과 또한 공정했기 때문이다.


한국 양궁대표팀은 아마도 앞으로도 세계를 제패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한국 양궁 대표팀의 결벽에 가까운 공정성에 대한 집착이, '활만 잘 쏘면 된다'는 가장 단순한 원칙을 선수들에게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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