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후 짐정리를 하다가 문득. 먼지 쌓인 CD들을 보았다. 간혹 좋아하는 음악가의 CD를 한 두장 사모으는 수준이었지만, 이마저도 이제는 처치 곤란이다.
3천원을 간신히 모아 만화책을 산 후 포장 비닐을 뜯을 때의 설레임. 몇끼를 굶은 돈으로 신보 CD를 사서 첫 트랙을 들을 때의 즐거움. 모든게 부족했기 때문에 더 만족스러웠다.
예전에는 그래도 이백장은 넘었던 것 같은데 주변에 나눠주고, 또 어떤 것은 팔고하다보니 남은 게 그리 많지는 않다. 그 때 섵불리 팔아버린 CD 중에는 브로콜리 너마저 1집같은 지금은 구할 수도 없는 음반들도 꽤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 다시보니 몇곱절로 가격이 뛰었다. 힙합 CD들도 오버클래스의 콜라쥬같이 소장가치 있다 생각되는 것을 빼고는 일본으로 이민간 친구에게 몽땅 줘버렸다.
남아있는 CD들이나마 시간이 날 때마다 찬찬히 들어보고, 당시 느꼈던 감정을 복기해보고자 한다. 그게 언제가 될 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그나마 제일 많이 가지고 있는 건 역시나 RATM과 OASIS같은 밴드인 것 같다.
경제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는 과거와 같은 수집의 재미를 쉽사리 느끼기 힘들다. 매사에 불감증이 심해지고, 3분 짜리 음악 한 곡을 끝까지 듣기도 힘들어졌다. 어쩌면 나이 든다는 것은, 얼렁뚱땅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 둘 떠나보내고, 가장 좋아하는 하나를 찾아가는 과정일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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