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탄생

대학생 시절엔 꼬박꼬박 신문을 구독했었다. 열독했다면 지금보다 나은 삶을 일궈냈을까. 나는 말그대로 말꼭지만 주루룩 훑어보는 말그대로 얼치기 구독자였다. 내가 선택한 신문은 한국일보였는데, 그 당시 한국일보의 특징이라면 한 지면 내에서도 논조가 극과 극을 달릴 정도로 다양성이 공존했다는 것이다. 요즘도 그러냐하면 글쎄.


당시 오피니언 파트의 작은 지면을 빌어 정일근 시인의 '길 위에의 이야기'라는 에세이가 실렸었다. 주로 어느 철에 물메기의 맛이 좋더라하는 짧은 단상들이었는데, 한 날은 원양어선을 타는 젊은 시인 이재성군의 이야기가 실렸다. 정일근 시인은 내가 잘아는 우리 지역 대학의 국문학과 교수이고, 그 학과에는 내 고교동창인 이재성이라는 친구가 분명히 다니고 있던 참이었다. "갓 등단한 젊은 시인 이재성군은 해양문학가가 꿈으로, 바다처럼 넓은 꿈을 위해 학교를 휴학하고 북태평양행 원양어선을 탈 것이다."고, 정일근 시인은 적고 있었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에는 옛부터 좋은 시인이 많이 나왔다. 천상병 시인도, 이선관 시인도 모두 나와 같은 고도의 공기를 마셨을 것이다. 내가 아는 누군가가 그들처럼 좋은 시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 조금은 설레였던 기억이 있다. 지금 그 친구는 어떻게 되었을까 문득 궁금해 기사를 찾아보았다. 일년의 고독을 온 몸으로 받아낸 그는 당당히 우리 지역 지방지의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정식 시인이 되어있었다. 링크는 그 친구의 항해를 담은 지방지의 기사.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054789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92705

먼 훗날 천상병, 이선관같은 대시인이 되어 누군가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주기를



소설 '백경'의 에이허브는 바다로 나가며, "가장 강한 위대함은 가장 강한 고독으로부터 나온다"라 말한다. 고교동창 재파의 손에서 '백경'이나, '노인과 바다'같은 위대한 작품이 쓰일지도 모를 일이다. 공부를 곧잘하던 친구놈이 곧 서기관을 단다던가, 재테크에 일찍 눈을 뜬 친구놈이 벌써 위례에 아파트를 샀느니 하는 소식보다 내 고향을 지키며 시를 쓰는 이 친구에게 더 많은 관심이 가는 것은, 역시나 길 밖에도 세상은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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