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청춘이랬는데

반지하는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장점이 있다 5년간의 거주로 체득한 사실



언젠가 강신주 교수가 라디오방송에서 멘토라는 인간들이 홀로서기를 방해하고 청춘을 착취한다'며, 오히려 '힐링보다 스탠딩이 필요한 시대'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아침에 자전거를 타며 라디오를 듣던 시절이었으니 아마도 손석희가 MBC에 있던 시절의 시선집중이 아니었나 싶다. 또 비슷한 맥락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김난도 교수의 책을 두고, '애들 아프게 한 게 누군데 그걸 또 처방전이랍시고 돈까지 받고서 팔아먹냐'는 변영주 감독의 인터뷰가 있기도 했다.


시대의 과도기였던 것 같다. 스님, 욕쟁이 할머니, 자연인, 센 언니 등 유행을 타고 다양한 개성의 자칭타칭 멘토들이 처방전을 판매했다. 그렇게나 스스로 멘토를 자청하던 이들이 이제 와서는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아볼 수가 없다. 지식의 밑천이 드러나 자연스레 시장에서 사장된 이도 있고, 공직 청문의 장에서 수많은 논쟁을 일으키고 낙마한 이도 있다. 무소유를 실천해야할 종교인은 등기부등본까지 공개되는 치욕을 맛보기도 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언젠가 읽은 적이 있다. 책을 덮고 난 뒤엔 마음 한 켠에 웬지 모를 찝찝함이 있었는데, 기성의 시스템 속에 편입되어 그 과실을 누리고있으면서, 인생의 실패라고는 고시 실패 정도가 전부인 사람이 내놓는, 기껏해야 대증요법 수준의 처방전에 대한 못미더움이 아니었나 싶다. 한껏 위약효과에 취해 이를 만병통치약인냥 맹신하는 이들에 대한 아니꼬움 또한. 결국 웬만해서는 읽은 책은 소장하는 나지만, 훗날 헌 책방에 팔아버렸다.


헬조선이란 단어도 언젠가부터 듣기 힘들어졌다. 과연 그 사이 살림살이는 나아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게 시장으로 나온다. 젊은이의 나약함만을 탓하는 누군가가 공갈꾼이라면, 늘 달콤한 위로만 건내는 이는 사기꾼이다. 마냥 채찍질만 당하기에는 악소리 한 번 못내보고 착취당하는 젊음에 코끝이 찡하고, 반대로 위로만 받기에는 억지로 꾸역꾸역 삼켜버린 화에 가슴이 답답하다. 스스로 멸균실 속으로 들어가려 하지 말자.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잘안아픈 것이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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