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 황현산 그 시대의 글쟁이들



거실 책장 한 켠에는 대학생 시절의 내가 박제되어 있다. 서른줄을 훌쩍 넘긴 내겐 이제 책상이 없다. 아직도 영국에서, 미국에서, 먹물노릇해볼 거라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지만, 이제는 식탁에서 책을 읽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편한 처지다. 그렇게 속편히 사는 놈들을 보며 농반진반 혀를 끌끌차는 지경에 이른 것을 보면, 기실 나 또한 생활인이 되었나보다.



고종석의 책을 사모으던 시절이 있었다.



고종석, 황현산의 평론집들을 가끔 꺼내서 읽곤 한다. 다시 읽어도 고종석의 평론들은 날카로우면서도, 한편으로 따뜻함을 잃지 않아서 좋다. 황현산의 평론집은 문장 하나하나가 수려하고, 공감을 자아낸다. 시인은 태어나고 산문가는 만들어지는 것이라지만, 그들의 칼럼이나 비평을 읽다보면 이 정도 수준의 산문가는 사실 타고나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에 이른다.


고종석이 지역주의에 지나치게 경도된 모습을 보이고, 유려한 글솜씨만큼의 인격이라던가, 논리를 갖추지 못했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한 뒤부터, 그의 글은 끊고 살았다. 다시 검색해보니 그 뒤로도 끊임없는 구설에 휘말린 모양이다. 황현산은 2018년 이후의 세상을 보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한창 고종석의 책을 읽던 시절이 2010년 즈음인데, 그 뒤로 내겐 취향이랄 것이 딱히 없어진 듯. 간혹 이원복의 교양만화를 읽는 것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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