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사건에 관한 장광설

잊혀지지 않기를, 더 오래 기억되기를



사건은 11월달 즈음에 있었던 것 같은데, 언론에 밝혀진 것은 12월초, 전국민이 알게 된 것은 그저께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을 통해여서 였다. 나도 이번 방송을 보고 처음 이 사건에 대해 알았다.


장화홍련부터, 콩쥐팥쥐까지 못된 계모 이야기는 사실 어느 문화권이나 보편적으로 있지만, 정인이 경우에는 개인의 의지로 자발적인 입양 절차를 거쳤기에 조금 경우가 다르긴 한다. 달리보면, 양모양부의 경우는 국가 시스템이 입양 전과정에 관여를 한 셈인데, 입양 가정에 대한 낙인은 지양되어야하겠지만 양육자에 대한 사전검증이 그래도 가능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보다 세심한 면담과 검사를 통해, 양육자의 심리성향에 대해 충분히 검증한다던가, 잔존 채무 등을 면밀히 조사해서 입양을 통한 소극적 경제적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지에 대해 조사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던가(이번 경우는 대출 혜택을 받기 위해서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물론 푸념같은 이야기로, 현실에서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대개 언론들과 시민 사회의 거센 비난 앞에서, 또 다시 조직의 논리가 내세워진다. 이를테면, 개별 수사관이 '아동학대범죄예방에관한특례법'상의 분리 조치를 취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보살핌을 받는 아이들은, 훈육의 과정에서 자연스레 폭력을 생활로 체화하고, 결국은 양부나 양모의 편을 드는 경우가 많아 후일 분리에 따른 가정 내 피해를 민원이나 위자료 청구 등의 소송을 통해 해결하려한다는 것이다.


가정 생활 내의 영역은, 공간적인 특성상 CCTV같은 물적 증거 확보가 어렵고, 더군다나 이번의 경우처럼 극단적인 학대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아동의 신체에서 학대의 증거를 찾기도 대부분 어렵다. 게다가 인력은 항시 부족해서 개인이 담당하는 피해아동의 수가 대개 600명을 넘어간다고 한다. 그들의 억울함에 일견 수긍이 가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경우처럼 극단적인 학대의 경우에는 오히려 말하지 못하는 영아이기 때문에 분리 이후 피해아동의 진술번복 등의 문제에서도 비교적 자유롭고, 극단적으로 말하면 전문가인 소아과 의사의 제 3자 증언과 피해 아동의 상처 부위 등 직접 증거들이 넘쳐났기 때문에 오히려 민원과 소송 과정에서 오히려 공세적인 대응이 가능했을 것이다.
일반적인 경우의 사례를, 극단적인 경우의 개별 사건에 갖다대니, 더욱더 옹졸한 변명처럼 들린다.


아마도 경찰 내부에서 1차 학대(폭행 피해를 의심한 어린이집 원장이 신고), 2차 학대(차량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목격한 지인이 신고) 신고의 경우에 담당자를 경징계한 것 또한 위와 같은 여건 상의 어려움을 지휘부도 알기 때문일 것이다.징계위원회의 구성에는 외부 전문가도 의견을 제시하기 때문에 조직적 비호가 있었다 보는 것은 어폐가 있다.


경찰청에서는 이번에도 강력한 대책이라며 학대 의심 신고가 수회 반복되는 경우, 원칙적으로 구속수사를 하겠다며 엄포를 놓는다. 허나 그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구속수사를 해야할 사건이면 구속요건만을 엄밀히 따져 구속수사를 하면 되는 것이고(우리나라의 구속 사유는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 별도의 추가 강제수사가 필요없을 정도로 증거가 명백한 경우, 신원과 직업 등이 확실하여 도주의 우려가 없는 경우 등은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분리의 사유만 따져서 즉각 분리조치를 하면 된다.(물론 우리나라의 법감정에는 구속이 형벌처럼 인식되는 면도 분명 있겠지만)


사실 우리 나라에도 국가가 아동을 보호하겠다는 나름의 고민이 엿보이는 관련법들이 있다. '아동복지법', '아동학대범죄예방에관한특례법'이 이미 시행 중이고, 특히 후자의 경우는 경찰관이 학대 신고 현장에 강제로 출입할 수 있는 권리, 정황상 재발이 우려되는 경우 일시적으로 아동과 부모를 분리시킬 수 있는 권리를 명시해놓았다.


또한 현장경찰관의 판단만으로 쉽게 결정할 수 없다면, 입건 후 다시 검찰을 거쳐 법원에 '피해아동의 분리', '보호시설 인계'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응급조치 신청조항도 있다. 현장경찰관에게 영장없이 가택을 사실상 수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고, 현장경찰관의 판단이 쉽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경찰서 담당 수사관을 통해 분리조치를 신청할 경우, 검찰(2차)의 승인을 거쳐 법원(3차)의 사후 판단 절차까지 거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아동학대의 소견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웃의 목격진술 등을 토대로, '가정폭력범죄의예방에관한특례법'을 적용해서 분리조치를 시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강제개문과 같은 물적 피해가 발생했을 때는 손실보상 청구에 대해 경찰관의 개별 배상책임을 면책시켜주고 있다.
가정폭력, 아동학대, 노인학대의 경우는 대개 응급조치와 임시조치의 과정이 비슷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정당한 공무를 집행했음에도 항의성 민원이 쏟아진다. 시의성 사건에 대해서는 시시때때로 바뀌는 대중의 잣대가 180도 바뀌기도 한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1인당 치안수요 수용율은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 허나 그러한 현장의 애로사항을 감안해도 가정폭력, 아동학대 범죄 피해는 너무나 비가역적이고, 대개의 경우 중대하다. 대개의 사건에서 법조항의 미비보다는 관련자들의 소극적 대응이 더 큰 문제가 된다는 말이다. 민원보다 징계가 더 무섭다면 누가 적극행정을 마다하겠는가.


2회 이상 학대의심 신고가 떨어진다면,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할 것이 아니고, 입법을 통해 반드시 수사개시를 원칙으로 하고, 3회 이상의 경우는 수사개시에 더해 학대의심 부모의 고의나 과실을 불문하고 분리조치를 원칙으로 해야한다. 그러한 무관용 원칙 하에서 경찰관, 아동보호기관이 적극 행정을 통해 분리조치를 시행했다면 민,형사상의 강력한 면책규정을 두어 국가를 믿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한다.


7년 전의 대책이 새로운 대책이랍시고 똑같이 되풀이되어 나왔다. 7년 전에도 비슷한 학대 사건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아동학대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범죄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모습을 달리하며 계속 존재할 것이다. 구조적으로 아동학대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처벌의 강화, 보호시스템의 강화보다 출동경찰관들이 국가를 뒷배로 든든히 믿고 일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을 만들어줘야한다. 진정한 문제는 개개 경찰관의 적극 행정을 가로막는 타성에 젖은 조직 문화다. 법의 정신을 실천하고, 실천하지 못하고는, 결국 의지의 문제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왜 검찰은 췌장이 절단될 정도의 물리력이 행사된 아동학대 사건을 '살인'이 아닌, '학대치사'로 기소했을까.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은 주위적 공소사실이 판단되지 않을 경우 예비적 공소사실을 추가로 판단해달라는 식의 공소제기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살인의 고의가 입증이 쉽지 않을 경우, 학대의 고의를 판단해주세요"라는 식이다. 살인의 경우 죽이겠다는 명백한 의지나, 죽을 지도 모르겠다는 의지의 인용이 필요한데, 이 마저도 입증이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치사'는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죽었다는 의미)
형사소송법이 문제였을까 담당 검사의 실체적 진실에 대한 적극적 규명 의지가 문제였을까.

'생각 >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프니까 청춘이랬는데  (0) 2021.06.24
시인의 탄생  (0) 2021.06.22
모두 어디로 간걸까  (0) 2021.06.06
고종석, 황현산 그 시대의 글쟁이들  (0) 2021.06.05
학대, 분리조치, 처벌만능주의  (0) 2021.05.1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