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어디로 간걸까

2014년도 어느 날, 흑석동에서





20대를 반추해보면, 친구놈들 중에는 고시를 준비하던 서울대생도 있었고, 형편이 어려워 먼저 사회로 뛰어든 친구도 있었다. 벌써 굴지의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도 있었고,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전역 후에 다시 학교를 간 친구도 있었다. 뒤늦게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군인도, 어쩌다보니 애아빠도 있었다. 뭐 20대란 대개 학교를 다니고, 가끔 돈을 벌고, 한 번쯤은 어디론가 떠날 수 있는, 그런 나이가 아니었나 한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교과서로 세상을 배웠다. 그 때 우리가 본 교과서 속 세상은, 아득한 별천지같은 것이었고, 우리의 시야는 결코 칠판의 직경을 넘지 못했다. 시험을 치르고나면 세상이 바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철저히 당사자들만의 이야기였다. 변한 건 오히려 우리였다. 아마 지금에서 다시 교과서를 읽는다면 각자가 보는 세상은 많이 다를 것이다. 나도 변했고 친구들도 변했다. 알 수 없는 벽이 생긴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그랬다. 그 사이 그렇게 우리는 참 많이 변했다.


십여년이 지난 지금, 고시생은 사무관이 됐고, 사회 속에서 이전투구하던 친구는 벌써 초등학생의 학부모가 됐다. 3,4년 빠른 것도, 느린 것도 억겁처럼만 느껴졌었는데, 돌이켜보면 찰나의 시간이었다. 우리는 참 많이 친했었는데, 큰 다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남처럼 서로를 잊고 지낸다. 잘 지내고 있는지, 변해가는 계절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오늘같은 날은 옛친구들이 생각난다. 여전히 서투른 좌충우돌의 삶이지만, 역시나 서툴러서 더 아름다웠던 시절이었다. 아프지 말고 다들 행복했으면하는 작은 바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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