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다큐멘터리 PD 박수용의 늙은 시베리아 호랑이 '꼬리'에 대한 관찰 추적기. 시베리아 호랑이를 다룬 다큐를 즐겨 보는데, 책으로 읽기는 또 처음이다. '한 생명에 대한 모든 기록'이라 표지에는 적혀있다. 자세히는 한 생명의 끝에 대한 기록이라 해야 옳다. 문단의 호흡이 조금 길다. 길목마다 위장텐트를 치고, 그들에게는 낯설었을 쇠붙이들을 땅 속에 파묻은 채, 작가 또한 그렇게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자연 논픽션을 책으로 읽는 것은 낯설다. 아직 반도 읽지 못했지만, 행간 곳곳에 이 땅에 마땅히 머물러야했을 존재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느껴진다. 꼬리에 대한사진이 더 많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시베리아의 왕대는 한반도 면적 그 이상을 호령하며 살아간다니 어쩔 수 없다. 그 ..
노라 애프런 감독의 다른 영화들은 진작에 보았다. 때문에, 이 감독의 영화에 영화적 깊이나 이야기의 완성도 같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이 영화를 이제서야 굳이 찾아서본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톰 행크스의 멜로영화라는 점, 90년대의 풍요로운 미국 대도시의 풍경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는 점. 이 두가지 이유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하다. 오히려 다른 모든 단점들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한창 '헬조선' 논쟁이 불을 뿜던 2016년에도 재개봉된 것을 보면, '90년대 미국 코미디'는 이제는 하나의 장르가 된 듯한 느낌. 대략적인 줄거리는 아내와 사별한 샘의 아들 조나가, '시애틀의 잠 못이루는 사람' 이라는 이름으로 아버지의 사연을 라디오 방송국에 소개하고, 이를..
부활을 좋아하던 내 중학교 시절 친구, 경휘. 노래방에 가면 늘 부활의 7집에 수록된 '안녕'을 불렀다. 지금 생각해도 그럴싸하게 따라했었다. 그 친구는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했고, 1년 남짓 다니던 기능대학을 중퇴하고 10여년전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다른 두 경험 사이에 한 해 한 해 벽이 쌓이더니, 어느샌가 연락이 끊기고 멀어졌다. 중학생 시절에도 그 친구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으리라 막연히 짐작은 했었지만, 결혼 청첩장을 받으며 나눴던 대화를 통해를 역시나 그 짐작이 사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부활의 노래를 들을 때면 늘, 어느 새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건실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그 친구 생각이 났다. 부활의 노래를 관통하는 특유의 서정 탓인가. 오늘은 모처럼 겨울비가 내려 부활의 '가..
평소 드라마를 잘 보지 않지만, 그나마 챙겨보는 드라마가 리얼리즘 수사물이다. 조디악, 더 와이어 같은 극 전개과정에서 절정이 생략된 듯한 작품들. 무미건조해 졸음이 쏟아져도 꾸역꾸역 참으며 보는 묘미가 있다. 트루 디텍티브는 미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있을만한 작품이다. 우디 해럴슨과 매튜 매커너히가 주연을 맡았고, 이들의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틈틈히 시즌 1의 3화까지 보았다. 시종일관 화면 속에 내려앉은 농무는 쇠락해가는 루이지애나의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레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한다. 루이지애나라하면 본디 프랑스 땅이었고, 주도 뉴올리언즈는 재즈가 유명하며, NBA선수 칼 말론의 고향이라는 것 정도 밖에 몰랐는데, 이제는 꽤나 그 풍경이 익숙해졌다. 살인사..
김현철은 재능있는 뮤지션이다. 비록 완숙에 접어든 30대 내내 표절시비에 시달렸다고는해도. 여전히 수십명의 뮤지션들의 범작 수백곡을 갖다대어도 20살 김현철의 '춘천가는 기차' 한 곡에 미치지 못한다. 김현철은 수많은 논란을 떠나, 분면 재능있는 뮤지션이다. 외국의 유행을 차용하는 것만으로도 파격이었던 시절이었다지만, 멜로디가 아닌 곡의 이미지를 갖다썼다는 항변도 그럴싸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30대의 김현철은 실망스러웠다. 테이프가 닲도록 들었던 18번들이 표절 의심곡이란 이야기를 처음 들어었을 때의 황당함이란. 유튜브를 통해 80년대 일본의 시티팝이 재조명을 받자, 자연스레 우리 나라에도 세련된 도시감성을 표현하는 시티팝 키드가 있었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알게되었다. 대놓고 시티팝을 표방한 11집의 ..
그가 남긴 모든 곡을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몇몇 곡은 삶을 관통하며, 플레이리스트의 공백기가 없다. 신해철을 상징하는 곡이라하면, 수많은 명곡들 중에서도 특히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를 뽑겠다. 때때로 보여지는 자기 모순적 발언들을 보며 왜 밑천 갉아먹으며 사서 고생을 할까싶었다. 하지만 온갖 비난의 목소리에도 흔들리지 않는 대쪽같은 소신만은 충분히 멋있었는데, 적어도 내 기억 속에 그는, 사회를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행동하는 지성인이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야성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비정상회담에서 그의 행복론을 듣고 많은 감명을 받았던게 불과 몇 년전이다. 그가 떠났따는 속보를 클릭하는 순간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유독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아마 저녁 8시경에 야구를 보다가 그의 부고 소식을 ..
"넝쿨처럼 너를 향하는 마음 이젠 어쩔 수 없어 등불을 켜고 달래보아도 시간만 흘러가네" 신촌블루스의 아쉬움. 이런 가사들은 오히려 촌스러워서 더 좋다. 옛 노래, 옛 가사.
중학생 때 좋아하던 펑크밴드는 아직도 음악을 하고 있다. 통장잔액이 320원 밖에 없어도, 집안 반대로 부서진 기타 값이 차 한대 값이라도 음악을 한다던 서른 줄의 김재국은, 어느 덧 쉰살이 가까워오는 지금까지도 음악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 사이 타카피는 탑밴드 경연에도 나오고, 프로야구팬 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이들이 없을만큼 유명해졌지만, 곤궁이야 쉽게 나아졌을까. '수원지방법원'이라는 노래가 자전적 이야기라는 걸 보면, 잘 모르겠다. 프로야구 중계에서 수도 없이 들었던 '치고 달려라'. 덕분에 많은 이들이 타카피를 알게 되었을테지만, 그들의 보석같은 곡들을 찾아듣진 않았을 것이다. 타카피의 음악은 굳이 장르를 떠나서도 멜로디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삶의 내공이 충만한 이라면, 그 속의 삶들에서 진한 ..
한 인간은 권력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을 배움으로써, 즉 불복종 행위를 통해 자유로와질 수 있다. 불복종이 자유를 위한 조건이라면 동시에 자유 또한 불복종을 위한 조건이다. 만약 자유를 두려워한다면 감히 '아니오'라고 말할 수 없을 뿐더러 불복종할 용기도 가질 수 없게 된다. 사실 자유와 불복종의 능력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따라서 자유를 외치는 어떠한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체제도 불복종을 허락하지 않는 경우에는 결단코 진리를 말할 수 없다. -Erich Seligmann Fromm- 월가의 황소 불알을 만지기 위해 오늘도 사람들은 줄을 서고 있다. 탐욕은 인간의 본질이다. 불복종을 알지 못하면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다는 데서, 안온한 일상 가운데서도 가끔은 죽비를 두드려줄 누군가가 필요할 뿐..
대중문화의 힘은 공감에 있다. 고급문화로서의 순수예술이 고고하게 ‘난 당신들과 다르다’를 외친다면, 대중문화는 ‘당신들도 나와 같아.’를 정면에 내세움으로서 문화수용층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최근 ‘Chick Lit'이라고 일컬어지는, 젊은 여성들의 현실적 고민을 다룬 매체들이 주류문화의 한 부분으로 등장하였다. 대중문화의 수용자적 측면에서,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도 젊은 여성들이 기성문화의 주류세력으로 편입되었다는 반증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 문화, 경제 다 방면에서의 여권신장은 문화적으로도 다양한 변화를 야기하였다. 칙릿류 소설 영화가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요즘이지만, 그 시작은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기록적 흥행으로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 30대의 노처녀를 정면에 내세운 ‘브리짓 존스의 ..
기타노 다케시를 좋아하면서도 매번 앞부분만 수도 없이 되풀이해 보았던, 내게 있어서는 '수학의 정석' 집합편 같은 작품. 모처럼 지루함을 꾸욱 참고 끝까지 보았다. 히사이시 조의 밍숭맹숭한 맹물과 같은 곡을 배경으로,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와 비슷한 듯 다른 청춘의 또 다른 결을 다루는 작품. 컷이 바뀌면서 순식간에 상황이 반전되어버리는 기타노 다케시식 유머를 빼면 시종일관 드라이한 점은 비슷하다. 영화의 메인 스토리는 비행 청소년 마사루와 신지의 이야기이지만, 그 주변인들의 성장과정 또한 중간중간 보여 주며 다양한 청춘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행 청소년 마사루와 신지가 우연한 계기로 권투에 입문한 뒤,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중, 세상의 쓴 맛을 보는 이야기. 마사루는 야쿠자 중간간부가 되지만, ..
두 말하면 입 아픈 나스의 명반, Stillmatic의 하이라이트 같은 곡. 한참 군대 전역 후 CD를 사서 모으던 시절이 있었는데, 고향의 백화점 음반 매장이 폐업하면서, 떨이로 팔던 것을 주워오다싶이 가져와 들었던 기억이 난다. 2010년 여름이었나. 그 때까지만 해도, 음반 매장도, 게임 매장도, 완구 매장도 근근히 맥을 이어오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국제전자상가 같은 곳이 아니면, 음반점을 길거리에서 찾아보기란 힘든 일이다. 사이렌 소리, 총소리같은 흔한 클리셰들로, 대략 거리의 이야기겠구나 짐작만 하면서 가사의 의미도 모른 채 마냥 하루에도 수십, 수백번을 반복해 들었던 곡. 지금도 출퇴근 길에 간혹 듣곤 한다. 이센스가 가장 좋아하는 래퍼로 나스를 뽑았고, 나스의 곡 중 가장 좋아하는 곡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