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 리턴(Kids Return, Kitano Takeshi, 2000)

 

 

"우린 끝난 걸까요?" "아직 시작도 안했어"



기타노 다케시를 좋아하면서도 매번 앞부분만 수도 없이 되풀이해 보았던, 내게 있어서는 '수학의 정석' 집합편 같은 작품. 모처럼 지루함을 꾸욱 참고 끝까지 보았다. 히사이시 조의 밍숭맹숭한 맹물과 같은 곡을 배경으로,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와 비슷한 듯 다른 청춘의 또 다른 결을 다루는 작품. 컷이 바뀌면서 순식간에 상황이 반전되어버리는 기타노 다케시식 유머를 빼면 시종일관 드라이한 점은 비슷하다.


영화의 메인 스토리는 비행 청소년 마사루와 신지의 이야기이지만, 그 주변인들의 성장과정 또한 중간중간 보여 주며 다양한 청춘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행 청소년 마사루와 신지가 우연한 계기로 권투에 입문한 뒤,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중, 세상의 쓴 맛을 보는 이야기. 마사루는 야쿠자 중간간부가 되지만, 결국 권력 다툼 끝에 큰 상처를 입고 조직생활을 그만두고, 신지는 권투로 승승장구 하지만 결국 약물에 손을 대고 선수생활을 접는다. 큰 갈등도, 성공도 없는 우리 주변 누구나의 이야기. 욕심만큼의 재능이 누군가에게는 허락되지 않고,(마사루), 한편으로 그 재능을 가졌다고 해서 그 재능으로 큰 성공을 일구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며(신지),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은 평범하게 괴로운 일이다(짝사랑남). 그 와중에 누군가는 노력하던 중, 운좋게 기회를 만나 소박한 성공을 이루기도 한다.(만담콤비)


나무위키를 살펴보다 보니, 10년여의 세월이 지난 후,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인터뷰 중 이들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이 있는데, 감독 자신은 마사루와 신지의 인생은 이미 70% 정도는 끝났다고 생각한다고. 야쿠자의 중간간부가 된다던가, 단 한 번의 패배로 권투를 접는다던가 하는 설정을 보면 영화 속에서 이들의 세월은 아마 5년에서 10년 정도는 흐르지 않았을까 싶은데, 서른 중반을 향해가는 지금 내 나이에서 보면, 감독이 자신이 창조한 청춘들에게 너무 박한 점수를 준 것은 아닌가 싶다. 사실 "아직 시작도 안했다"는 마지막 대사를 통해 보면, 당시의 기타노 다케시는 관객과 같은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기타노 다케시의 만담집에서였나, "희망을 이야기하는 놈들의 공통점은 다들 먹고 살만한 놈들이라는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희망을 이야기는 하는 이들이 다들 먹고 살만한 것은 맞는 말이겠지만, 누군가는 눈물에 젖은 빵만으로도 배가 부른 법이다. 삶의 모습도, 그 삶을 바라보는 이들의 생각도 저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대개 학창시절 놀고 먹던 놈들이 잘 먹고 잘사는 것이 또 현실이더라) 마사루와 신지는 가끔은 삐끗하고 넘어질 지언정, 또 다시 그들만의 방식으로 영화 속 2021년을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영화의 주인공들, 맨 왼쪽의 학생은 결국 짝사랑하던 찻집 여자와 결혼까지 했으니 성공한 인생일지도



카네코 켄은 극중의 성정대로, 현실에서도 이종격투기 선수로 활약하다가 지금은 휘트니스 업계에서 큰 손이 되었다. 물론 배우로도 활동 중. 안도 마사노부는 워낙에 유명한 배우이니 다 알테지만, 그 이후로도 배우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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