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 Nora Ephron, 1993 )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노라 애프런 감독의 다른 영화들은 진작에 보았다. 때문에, 이 감독의 영화에 영화적 깊이나 이야기의 완성도 같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이 영화를 이제서야 굳이 찾아서본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톰 행크스의 멜로영화라는 점, 90년대의 풍요로운 미국 대도시의 풍경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는 점. 이 두가지 이유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하다. 오히려 다른 모든 단점들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한창 '헬조선' 논쟁이 불을 뿜던 2016년에도 재개봉된 것을 보면, '90년대 미국 코미디'는 이제는 하나의 장르가 된 듯한 느낌.


대략적인 줄거리는 아내와 사별한 샘의 아들 조나가, '시애틀의 잠 못이루는 사람' 이라는 이름으로 아버지의 사연을 라디오 방송국에 소개하고, 이를 우연히 듣게 된 애나가 샘을 자신의 운명의 상대로 여기게되며, 약혼남과 파혼하면서까지 이어지게 된다는 내용. 활자로 늘어놓으니 가뜩이나 허술한 줄거리가 더욱 허무맹랑하게 느껴진다.


물론, 극 중 애나가 좋아하는 캐리 그랜트 주연의 '러브 어페어'라는 영화의 대사를 매개로, 개연성의 구멍들을 메꾸어 보려하지만, 관객을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애나의 약혼남이 어떤 하자가 있겠거니 했지만, 그는 그대로 좋은 남자였다. 샘 볼드윈이 교제 중이던 빅토리아 또한 마찬가지이다. 샘은 작중에서, 빅토리아와 교제 중에 오직 애나의 외모만을 보고 뒤쫓아가기도 하는데, 영화의 배경소재인 '운명'을 가장하더라도, 아무래도 좀스럽다. 애나의 경우는 더 심각한데, 아예 흥신소를 통해 샘의 뒷조사를 하기까지 한다.

90년대 청춘의 심볼, 멕 라이언



이제는 나이가 들었는지, 극중 소재에 대한 조사가 너무 부족하거나, 작중 이야기의 개연성이 부족한 영화들은 진득히 지켜보기가 쉽지 않다. 대개 전자도 후자도, 한국 오락 영화의 오랜 전통이다. 90년대 외화들 중엔 클래식, 클리셰가 되었지만, 지금의 관점에서는 너무나 허술한 영화들이 몇 있는데,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도 그런 영화 중의 하나다. 오롯이 그 허술함을 배우들의 매력만으로 헤쳐나가는 듯 보인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한 줄로 정의하자면,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여자와, 얼굴만으로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남자의 이야기'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90년대의 멕 라이언과 톰 행크스라면 물론 가능할 만한 이야기일런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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