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노크라시의 종말과 방역실패

테크노크라트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이야기는 과거부터 주욱 나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약간은 결이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다. 과거에는 정책 결정 과정에 있어서의 테크노크라트의 영향력이 줄어든다는 의미로 쓰였다면, 이제는 아예 테크노크라트의 등용 그 자체를 거부하는 듯한 인사 정책 기조를 의미하는 것 같다. 대통령을 도와 국가의 정책을 총괄하는 비서실장 자리를 참여연대로 대표되는 시민 사회 출신이 독점한 것만 보아도 그렇고, 때때로 전혀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각료들을 장관으로 임명해 국무회의을 구성한 점도 그렇다. 단순히 낙하산, 코드, 보은 인사가 문제가 아니라, 전문성, 자질이 문제라는 말이다.

비전문가의 아집이 만들어낸 우상향의 아름다움



당장 생각나는 각료들만 해도 수두룩하다. 직전 국토부 장관은 환경 운동, 노동 운동가 출신의 시민 사회 출신이었다. 환경과 노동, 언뜻 보아도 관련 없어 보이는 두 분야를 아우르며 커리어를 키워오신 그 분을 역대 최장수 장관으로 중용한 결과는 정권 연장과 세수 확보를 위해 일부러 집값을 부양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불러일으켰다. 당장 내 또래만 해도, 2017년 이전에 결혼을 한 이들과 아닌 이들의 자산 격차는 이미 10년 이상 벌어졌다.


정권 초기에는 참여연대 출신의 재벌개혁 운동가가 금융감독원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외적으로는 금융사범들의 부당이익을 환수하는 한편 늘 한 발 앞서가는 첨단금융범죄를 선제적으로 예방하고, 조직 내적으로 고도의 금융 지식을 가진 테크노크라트들의 미시적인 의견을 취합해 거시적인 금융정책의 방향을 결정해야하는 막중한 책임의 자리. 여러모로 인류학사 출신의 참여연대 사무총장의 경력은 이에 턱없이 모자라보였다. 또 전문성에 덧붙여 청문회 과정에서는 도덕성과 관련해서도 수많은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제학 박사 출신의 살라자르, 먹물들이 꼭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동어반복의 언어도단 정책을 주창하며 경제학 박사가 아닌 경영학 박사가 정책실장 자리에 임명된 일은 그나마 위 둘에 비하면 양반이다. 국가의 100년 대계인 에너지 정책의 주요사항을 결정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에는 원전에 대한 어떠한 지식도 없는 환경단체 출신이 완장을 차고 들어온 덕에, 회의에 앞서 기초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백신 수급과 관련해서는 또 어떠한가.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며, 백신을 선구매할 필요가 없다고 야당에 항변하던 정부는 FDA 승인조차 받지 못한 백신을 임시방편으로 접종하게끔 하더니, 그마저도 이제는 구하지 못해 표본이 택도 없이 부족한 교차접종의 임상 실험 결과를 들며 정작 안정성 문제를 등한시 하고 있다. 사회 전체의 편익을 잣대로, 접종의 위험성과 코로나의 사망 위험성을 등가 비교하는 모습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자아낸다. 철저히 개인에게 위험을 전가하고 강요하는 현실이다. 이 모든 것은 예방의학 전공의 엉터리 전문가가 개인의 사견을 과학적 진실인양 호도하여 초기에 여론의 잘못된 방향을 주도한 결과이다. 의사라기보다는 차라리 정치인에 가까웠던 이 엉터리 전문가는 암센터 교수직에서 이후 청와대 방역기획관이라는 1급 고위공무원으로 영전하는데 성공했다.


5공화국 경제의 설계자 김재익



이탈리아는 부패한 정치꾼 내각이 국민 경제를 그르치자, 결국 다시 테크노크라트를 중용했다. 산하 기관장 자리쯤은 보장되었던 과거와 달리 경력에 대한 보상도 사라진 오늘 날, 젊은 테크노크라트들에게 권력자에 맞서 소신을 기대하는 것은 과한 기대일런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책의 입안 과정에서 테크노크라트들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민주적 의사결정이 당위의 문제라면, 그 전제로서의 과학적 사실은 존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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