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과 입법만능주의

인천 흉기 난동 사건과 관련해, 세간이 시끄럽다. 한 쪽에서는 출동경찰관 개인의 무능에서 비롯된 조직 구성원의 일탈을, 또 다른 한편에서는 경찰관의 적극적인 무기 사용을 꺼리게 만드는 사회적 시스템을 지적한다. 실탄은 커녕 공포탄도 발포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권총을 꺼내어 대치조차 하지 못하고 현장을 이탈한 이번 사건에서 왜 굳이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이야기나 나오는지는 의문이다. 차라리 여경 무용론은 일견 상황에라도 들어맞기에 논의의 필요성이나마 있어보였지만, 함께 출동한 19년차 베테랑 남경 또한 도대체 이해되지 않는 상황 대응을 한 것이 밝혀지자 이내 수그러들었다.


경찰 내부적으로는 무기사용으로 인한 면책규정을 신설함으로서, '주위 사정을 합리적으로 판단'한 적극적 무기 사용을 허용해달라는 취지의 주장을 한다. 여론은 늘 방향이 없다. 바람이 불면, 부는 데로 속절없이 들어눕는 풀의 이름은 민초다. 미국 경찰의 적극적인 무기 사용을 예로 들며, 우리도 그렇게 직무중 적극적 무기 사용을 허하자고 한다. 미국 경찰이 무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된 사회 환경, 일반 국민의 무기 소지에 관한 역사적 배경, 또 이로 인한 부작용에 대해서는 모두들 알면서도 입을 닫는다.


경찰의 과잉 진압에 의해 흑인시민이 목숨을 잃은 조지 플로이드 사건, 흑인 시위대에 동조한 백인 청년 2명을 한 소년이 정당방위 차원에서 사살한 리튼하우스 사건 등은 여전히 미국을 반으로 갈라놓고 있다. 시발점은 역시나 공권력의 과잉 진압이었다. 정치권은 이를 이용해 늘 그렇듯 장사를 한다. 경찰의 물리력 사용으로 촉발된 흑백 갈등은, 미국에서 가장 잘팔리는 흥행소재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농민 백남기의 '병사' 진단서가 논란이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현 형사법 체계에서 경찰의 무기사용에 관한 면책 규정이 없느냐하면, 물론 아니다. 경찰관직무집행법과 그 시행령에서는 무기 사용에 대한 체계적인 규정을 두고 있고, 형법은 법령에 의한 행위를 정당행위로 취급해 범죄의 성립을 부정한다. 설사 과잉방위에 해당된다 하여도, 이번 신설 면책 규정과 다를 바 없이, 형을 면제하거나, 감경할 수 있다고 하여 그 책임을 가볍게 해주고 있다. 조직도, 법률도 옥상옥이다.


민사 배상문제만 하더라도 그렇다. 국가가 공권력의 과잉사용의 피해자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책임상계에 의한 엄격한 기준 하에 배상을 허하고, 무기를 사용한 경찰관 개인에 대해서는 구상을 하지 않는 것으로 족하다. 실제로도 현행 법체계 하에서도, 고의, 중과실의 경우를 제외하면 국가가 경찰관 개인에게 구상을 청구하는 일은 없다. 경찰관 개인에 대해 손해배상이 청구된 경우에는, 경찰관 책임보험의 보장 범위 확대와 함께 국가 소송 통보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입법을 담당하는 행안위 국회의원도, 경찰 조직 내부에서도, 이를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수많은 법률 전문가들이 입을 닫고,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있다. 임기응변식의 법개정으로라도 난맥상을 타개해보려하는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여론에 영합하여 입법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현 작태는 한심하다. 모두가 너무도 쉽게 잊거나, 혹은 잊은 척한다. 87년 체제 이후로도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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