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게 개인 아침 하늘을 보며, 홋카이도라 할지라도 11월초에 눈 보기는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그 생각이 틀렸음은 몇시간 뒤에 바로 알게 되었지만. 이 날은 오타루로 가보기로 했다. 비에이 후라노 같은 관광지가 유명하지만, 도시 구경을 좋아하는 나는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시간도 촉박했고. 오타루는 홋카이도 개척의 역사에 있어 하코다테와 함께 중요한 거점도시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만화 미스터 초밥왕과 영화 러브레터의 배경으로 유명한 곳이다. 짐이 없는 오늘은 한적한 소도시의 여유로움을 만끽하고자 걸어서 역까지 가기로 했다. 치토세시는 삿포로의 위성도시로 대부분의 인구가 삿포로로 출퇴근하며 경제활동을 한다. 베드타운답게 오전시간대는 거리에서 사람 찾아보기가 힘들다. 문제는 내가 또 열차를 잘못..
지금껏 가본 곳 중에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냐고 누군가 내게 물으면 나는 늘 홋카이도라고 대답한다. 겨울의 서정이 듬뿍 느껴지는 설국 홋카이도는 겨울이 특히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아리라. 여름의 홋카이도는 겨울 못지 않게 아름답다는 사실을. 홋카이도는 회사생활도 어느 정도 적응되어갈 무렵, 남아있는 연차 소진을 위해 11월초 이른 겨울에 홀로 다녀온 여행지이다. 지금은 현와이프 구여친님께서 선뜻 허락해주신 덕에, 모처럼 홀로 떠났던 여행. 함께 가는 여행이 대개 더 좋지만, 홀로 떠나는 여행은 또 다른 맛이 있다. 사진들을 다시 보다보니, 코로나 이전의 세상이 새삼 그리워진다. 도라에몽이 주머니 속에서 요술 도구를 꺼내어준다한들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항공권은 제주항공에..
장모님 지인 내외분이 민박을 치던 오두막을 빌려주셨다. 나는 처음이지만, 처가에서는 매년 초여름, 초가을녘 찾는 곳이다. 인제 스피디움 인근의 오래된 민박집인데, 이제는 주인장 내외께서 돌아가시고 자식들이 가끔 찾아 관리하는 중이란다. 시설은 사설 캠핑장에 비할 바가 못되지만, 그래도 프라이빗하게 누구의 눈치도 보지않고 캠핑을 즐길 수 있다. 조만간 시설을 정비해서 게스트하우스 등을 운영하실 계획이라는데, 그전에 많이 애용해주어야지. 서울 양양고속도로의 끔찍한 주말정체를 잘알기에 새벽 5시에 차 2대를 나눠타고 출발했다. 처제 부부, 장인장모님까지 3커플이 함께 짐을 꾸리니 차 2대로도 빠듯했다. 캠핑용품 테트리스만 10분을 넘게 한 것 같다. 다행히 차가 막히지 않아 1시간 30분 정도 달려 도착했고,..
대학생 시절엔 꼬박꼬박 신문을 구독했었다. 열독했다면 지금보다 나은 삶을 일궈냈을까. 나는 말그대로 말꼭지만 주루룩 훑어보는 말그대로 얼치기 구독자였다. 내가 선택한 신문은 한국일보였는데, 그 당시 한국일보의 특징이라면 한 지면 내에서도 논조가 극과 극을 달릴 정도로 다양성이 공존했다는 것이다. 요즘도 그러냐하면 글쎄. 당시 오피니언 파트의 작은 지면을 빌어 정일근 시인의 '길 위에의 이야기'라는 에세이가 실렸었다. 주로 어느 철에 물메기의 맛이 좋더라하는 짧은 단상들이었는데, 한 날은 원양어선을 타는 젊은 시인 이재성군의 이야기가 실렸다. 정일근 시인은 내가 잘아는 우리 지역 대학의 국문학과 교수이고, 그 학과에는 내 고교동창인 이재성이라는 친구가 분명히 다니고 있던 참이었다. "갓 등단한 젊은 시인 ..
배송되어온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게으름 때문에, 또 처음 반자동머신을 접하는 낯섦때문에, 한동안 쳐박아두고 사용하지 않았다. 자리는 또 어찌나 애매하게 차지하는지 놓아둘 공간도 마뜩찮아서, 성가신 짐짝 취급만 받던 참이었다. 고민 끝에 마켓비에서 철제 캐비넷을 하나 사서, 홈카페장으로 쓰기로 했다. 1시간여 정도 캐비넷을 조립 후 머신을 올려놓고는 처음으로 커피를 내려봤다. 원두는 사은품으로 온 카페유라의 원두. 그라인더의 사용법은 무척이나 간단하다. 원두 넣는 곳 아래에 있는 큰 다이얼을 통해 0부터 25까지 원두의 굵기를 선택하고, 그라인더 가운데 있는 다이얼을 돌리면 원두를 가는 시간을 설정할 수 있다. 잘모르니 가장 작은 입자로 최저보다 조금 긴 시간을 설정. 에스프레소 머신에는 메인 버튼이 ..
"넝쿨처럼 너를 향하는 마음 이젠 어쩔 수 없어 등불을 켜고 달래보아도 시간만 흘러가네" 신촌블루스의 아쉬움. 이런 가사들은 오히려 촌스러워서 더 좋다. 옛 노래, 옛 가사.
고등학교 시절, 학교 앞 헌책방에 수학의 정석을 팔러갔었다. 혹여 누가 훔쳐갈까 싶어 써놓았던 이름만 빼면 흠잡을 곳 없는 새책이었는데도, 제 값의 반도 못받는 것이 야속해 그냥 나왔던 기억이 난다. 대학교 1학년 때 데즈카 오사무의 시리즈가 보고 싶었다. 인터넷을 보니 헌책방을 다니면 운좋게 구할 수도 있다고 했다. 당시로서는 청계천가에 헌책방이 꽤 있었는데, 어딜 가도 구할 수 없었다. 익숙하지 않은 서울지리에, 땡볕에 진창 고생만 했던 기억이다. 다시 헌책방을 찾은 것도 오년전. 졸업시기를 훌쩍 넘긴 무늬만 졸업준비생 시절이었다. 넘치는게 시간이고, 쪼들리는게 돈인지라 인근에 뿌리서점이 있어 한 번 들러본 것이다. 낡은 책 속에 있는 구구절절한 사연들이야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랴만, 눅진한 지하공..
중학생 때 좋아하던 펑크밴드는 아직도 음악을 하고 있다. 통장잔액이 320원 밖에 없어도, 집안 반대로 부서진 기타 값이 차 한대 값이라도 음악을 한다던 서른 줄의 김재국은, 어느 덧 쉰살이 가까워오는 지금까지도 음악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 사이 타카피는 탑밴드 경연에도 나오고, 프로야구팬 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이들이 없을만큼 유명해졌지만, 곤궁이야 쉽게 나아졌을까. '수원지방법원'이라는 노래가 자전적 이야기라는 걸 보면, 잘 모르겠다. 프로야구 중계에서 수도 없이 들었던 '치고 달려라'. 덕분에 많은 이들이 타카피를 알게 되었을테지만, 그들의 보석같은 곡들을 찾아듣진 않았을 것이다. 타카피의 음악은 굳이 장르를 떠나서도 멜로디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삶의 내공이 충만한 이라면, 그 속의 삶들에서 진한 ..
모처럼 다시 보게 된 고전영화. 첫 번째로 본 것은, 영화와 관련된 교양수업이었다. 물론 그런 계기가 아니라면 이토록 오래 된 고전영화는 쉽사리 눈길을 주기가 힘들다. 휴일 낮 채널을 돌리던 중 다시 보게 됐다. 스크린 속의 이탈리아에서는 가끔 비가 내렸다. 영화 속 안토니오의 얼굴에는 세파에 찌든 굵은 주름이 새겨져 있다. 아들 브루노에게도 현실은, 학교 대신 가족 수당을 위해 아버지와 함께 길을 나서야하고, 모처럼 들어간 식당에서는 자기 자신의 몫을 두고도 부잣집 아이의 몫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는 초라함으로 다가온다. 오랜 기간을 직장없이 살아온 안토니오에게 벽보 붙이는 일은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뜻대로만 된다면 1만리라는 못벌더라도 초봉으로 1200리라는 받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 돈만 잘 간수한..
한 인간은 권력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을 배움으로써, 즉 불복종 행위를 통해 자유로와질 수 있다. 불복종이 자유를 위한 조건이라면 동시에 자유 또한 불복종을 위한 조건이다. 만약 자유를 두려워한다면 감히 '아니오'라고 말할 수 없을 뿐더러 불복종할 용기도 가질 수 없게 된다. 사실 자유와 불복종의 능력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따라서 자유를 외치는 어떠한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체제도 불복종을 허락하지 않는 경우에는 결단코 진리를 말할 수 없다. -Erich Seligmann Fromm- 월가의 황소 불알을 만지기 위해 오늘도 사람들은 줄을 서고 있다. 탐욕은 인간의 본질이다. 불복종을 알지 못하면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다는 데서, 안온한 일상 가운데서도 가끔은 죽비를 두드려줄 누군가가 필요할 뿐..
20대를 반추해보면, 친구놈들 중에는 고시를 준비하던 서울대생도 있었고, 형편이 어려워 먼저 사회로 뛰어든 친구도 있었다. 벌써 굴지의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도 있었고,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전역 후에 다시 학교를 간 친구도 있었다. 뒤늦게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군인도, 어쩌다보니 애아빠도 있었다. 뭐 20대란 대개 학교를 다니고, 가끔 돈을 벌고, 한 번쯤은 어디론가 떠날 수 있는, 그런 나이가 아니었나 한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교과서로 세상을 배웠다. 그 때 우리가 본 교과서 속 세상은, 아득한 별천지같은 것이었고, 우리의 시야는 결코 칠판의 직경을 넘지 못했다. 시험을 치르고나면 세상이 바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철저히 당사자들만의 이야기였다. 변한 건 오히려 우리였다. 아마 ..
아내의 친구가 준 르쿠르제 커피잔을 주로 사용하고 있고, 내 고향집에서 가져온 레트로 맥주잔도 있지만, 아무래도 머그컵이 하나 필요할 거 같아, 구매했다. 소재는 내열유리고, 머그컵 사이즈는 400ml. 500ml는 아무래도 커피잔으로 쓰기에는 좀 클 것 같다. 무척 가볍고, 내열성도 좋다. 뜨거운 음료를 담아도 쥐고 있는 데 큰 무리가 없다. 개당 8,000원 정도면 살 수 있는듯한데, 물론 다이소 컵에 비하면 사악한 가격이지만, 그래도 오래 쓸 요량이면 저렴한 듯. 컵받침은 대개 함께 구매하는데, 우리는 우드로 선택했고 잘 고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