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루, 운하와 오르골당
- 여행/삿포로
- 2021. 6. 23.
맑게 개인 아침 하늘을 보며, 홋카이도라 할지라도 11월초에 눈 보기는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그 생각이 틀렸음은 몇시간 뒤에 바로 알게 되었지만. 이 날은 오타루로 가보기로 했다. 비에이 후라노 같은 관광지가 유명하지만, 도시 구경을 좋아하는 나는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시간도 촉박했고. 오타루는 홋카이도 개척의 역사에 있어 하코다테와 함께 중요한 거점도시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만화 미스터 초밥왕과 영화 러브레터의 배경으로 유명한 곳이다.
짐이 없는 오늘은 한적한 소도시의 여유로움을 만끽하고자 걸어서 역까지 가기로 했다. 치토세시는 삿포로의 위성도시로 대부분의 인구가 삿포로로 출퇴근하며 경제활동을 한다. 베드타운답게 오전시간대는 거리에서 사람 찾아보기가 힘들다.
문제는 내가 또 열차를 잘못탔다는 것인데, 오타루행 반대쪽 열차를 타는 바람에 낯선 간이역에 내리게 되었다. 물론 계획 없는 여행객의 시간이란 넘치도록 많아서, 30분 정도 간이역 주변을 구경했다. 역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훼손되지 않은 자연이 지천이었다.
다시 오타루행 열차를 타자 언제 그랬냐는 듯 폭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혹 렌트카라도 빌렸다면 익숙치 않은 눈밭에서 몹시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대부분 오타루를 여행하는 이들은 오타루역 한정거장 전에 내려서 관광 후 오타루 방면으로 가는 루트를 이용한다. 시계탑이나 오르골당 같은 유명관광지가 모두 그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나도 그 루트를 선택했고, 미나미오타루역에서 내렸다.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귀가 떨어져나갈 것 같아 더이상 못걷겠다 생각할 때쯤 가까스로 오르골당에 도착했다.
오타루 시내에는 과거의 영광을 추억이라도 하듯 오래된 건물들이 많았는데 대개는 상점과 은행들이었다. 오타루 운하는 비록 작지만, 그 당시엔 그 협소한 규모의 토목공사도 꽤나 큰 자본조달이 필요했을 것이다. 오타루도 과거에는 돈이 모여드는 도시였다.
오르골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 수많은 기념품점과 스시집을 구경하다보면 어느새 오타루 운하에 걸음이 닿게 된다.
사실 운하라지만 교역선이 다닐 정도는 아니고, 간신히 뗏목이 오다닐 수 있을 정도의 규모이다. 길이가 짧기에 20분이면 운하를 한바퀴 돌 수 있었는데, 관광객을 이용한 유람선도 다니는 것 같았다. 운하 주변의 벽돌 건물들은 모두 창고로 쓰이던 건물인데, 이제는 기념품 가게와 음식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개척시대의 번영을 뒤로 하고 쇠락하는 도시 오타루. 인구는 몇년째 순유출이 지속되고 있고, 도시의 주요 산업은 상업에서 어업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소매업으로 바뀌었다. 그나마 오타루가 지금처럼 유명해진 데는 역시나 일본 대중문화 컨텐츠의 역할이 컸다. 미스터 초밥왕을 보며, 영화 러브레터를 보며 자란 세대들이 세대를 이어 오타루를 찾고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이 아름다운 운하와 오르골의 도시 곳곳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써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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