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도둑(Ladri di biciclette,Vittorio De Sica,1948)

원제를 직역하면, 자전거도둑들인데 결국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이탈리아의 시대상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모처럼 다시 보게 된 고전영화. 첫 번째로 본 것은, 영화와 관련된 교양수업이었다. 물론 그런 계기가 아니라면 이토록 오래 된 고전영화는 쉽사리 눈길을 주기가 힘들다. 휴일 낮 채널을 돌리던 중 다시 보게 됐다.


스크린 속의 이탈리아에서는 가끔 비가 내렸다. 영화 속 안토니오의 얼굴에는 세파에 찌든 굵은 주름이 새겨져 있다. 아들 브루노에게도 현실은, 학교 대신 가족 수당을 위해 아버지와 함께 길을 나서야하고, 모처럼 들어간 식당에서는 자기 자신의 몫을 두고도 부잣집 아이의 몫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는 초라함으로 다가온다.


오랜 기간을 직장없이 살아온 안토니오에게 벽보 붙이는 일은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뜻대로만 된다면 1만리라는 못벌더라도 초봉으로 1200리라는 받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 돈만 잘 간수한다면 언젠가 브루노에게 피자도 사주고, 아내 마리아가 시집올 때 사온 이불보보다 더 좋은 이불보를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소박한 계획조차도 그에겐 허락되지 않는다. 안토니오는 그 계획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자전거를 영화 속 또 다른 안토니오에게 도둑맞게 된다. '자전거도둑'이 그리는 2차대전 후의 이탈리아 사회의 모습은 누군가의 몫을 뺏어야 자기 몫을 가질 수 있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모습과 처연하게도 닮아있다.


일자리를 잃고 나서 들어간 식당에서 “무슨 수가 있을 것”이라고 하는 안토니오가 맞닿게 되는 현실은 결국 '죽는 수'만 아니면 되는 절망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가 기성의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결국 스스로 그 시스템 속으로 들어가 공범자가 되거나, 혹은 그 것에 철저히 저항하는 것이다. 물론 안토니오는 다른 이의 몫을 뺏음으로서 공범자가 되는 방법을 택한다.


영화는 시종일관 어떠한 가감도 없이 그 당시 사회 그대로를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멈춰선 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모두 담담히 앞으로 걸어갈 뿐이다. 영화를 보고나서 친구들에게 모처럼 전화를 걸었고, 저마다 예전과 달리 바쁘다고 했다. 우리에게도 현실은 옆보다는 앞을 보게하는 성격의 것이다. 안토니오 부자가 도둑맞은 자전거를 찾아가는 과정은 우리 세대가 잃어버린, 혹은 잊어버린 그 무언가를 찾는 과정과 똑 닮았다. 나는 모두가 아등바등 발버둥 치는 현실 사회에서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현실을 본다.


안토니오와 브루노, 이들은 모두 일반인을 캐스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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