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순서가 뒤죽박죽인 느낌은 있지만,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예식장의 선정이었다. 요즘은 '베뉴'라고 하던데 굳이 그렇게 표현할 이유가 있는지, 좀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외국에서는 다들 그렇게 부르나? 예식장의 선정은 가장 고려해야할 사항도 많고, 그만큼 다툼의 여지도 많은 결혼 준비 최대의 난관이 아닌가싶다. 각자의 취향에 더해서, 양가 집안 어른의 의견까지 더해지니, 사소한 것 하나하나 허투루할 것이 없었다. 일단 우리의 고려사항은 크게, 양가 모두 본가가 경상도이기 때문에, '고속도로에서 가까운지', 복수홀 운영인 경우 동선이 꼬이면서 시장통같은 분위기가 되는 것을 많이 봐왔기에, '단독홀로 여유로운 예식이 가능한지'였다. 식대 가격이라던지, 천고라던지, 단상의 존재여부라던지, 조명의 분..
강산에의 모든 앨범을 찬찬히 들어보았었는데도, 예전엔 미처 알지 못했던 노래. 2017년 5월엔가, 라디오에서 우연히 듣고는 좋아하게 된 노래. 거제도를 동기들과 함께 여행하던 길에서, 해질 녘 어느 시골길을 지나가며 들었던 노래. 이른 낮더위가 어느새 사라지고, 설익은 초여름의 저녁이 내리깔리기 시작할 때, 시골의 풀내음, 따스한 바닷바람과 함께 했던 노래.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인데도, 벌써 꽤 오랜 인연들이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기억의 변곡점에서, 그 시절 함께 했던 그 친구들과는 가벼이 스쳐지나지 않고 아직 연락하고 지내고 있으니.
골전도 헤드폰은 그 실용성에 비해,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나조차도 난청 환자들이나, 청신경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쓰는 물건이겠거니 했으니까. 기본 원리는 우리가 어렸을 적 종이컵에 실을 연결해서 서로 목소리를 들었던 것처럼, 물체를 타고 전달되는 공명음을 이용한 듯 싶다. 아무튼 고막을 거치지 않고, 관자놀이 쪽의 두개골을 타고 소리가 흘러가기 때문에, 고막 등에 큰 자극없이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 사실 구매한 지는 이미 1년이 지났는데, 이런 저런 일로 잘 사용하지 않다가, 요즘들어 그 유용성을 새삼 느끼는 중이다. 특히 일하면서 주변 소리에 항시 귀를 기울여야하는 상시 감독 근로자들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일반 직장인들의 경우에도 주변과 소통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
창원 출신들은 애향심이 강하다. 풍요로운 9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이들이라면 더욱이. 2차 산업이 활황이었던 90년대 초중반은, 특히나 창원 경제의 전성기였다. 왕복 8차선 창원대로만큼 넓은 도로는 국내에서도 손꼽는다던가, 창원 로터리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로터리라던가, 창원터널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터널이라던가, 돌이켜보면 정말 자랑할 것이 없었구나 싶은, 그런 이야기조차도 자랑스럽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고향에 남아있는 친구들이 있지만, 그나마도 주중에는 인근의 거제나 부산, 대구에서 일하고 있다. 온전히 창원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사는 친구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나 또한 머리 크고는 서울에서 지낸 시간이 훨씬 길다. 그 사이 나도 나이를 먹었고, 도시도 변화했다. 고향을 자주 찾기는 하지만..
쿼츠 무브먼트가 처음 세상에 등장했을 때보다 어쩌면 더 큰 시계 산업의 변화가 올 것 같다. 내 주변만 봐도 쿼츠는 고사하고, 흔히 보이던 G-shock 같은 전자시계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스마트워치는 전화, 문자는 기본이고, GPS를 이용한 고도 측정에, 심지어 헬스앱에 연동하면 혈당과 혈압도 측정이 가능하단다. 이진법의 세상이 가져다주는 무한한 확장성이 놀랍다. 시계 판매량에서 스와치그룹을 제치고 애플이 압도적 1위를 했다는 기사도 언뜻 본 것 같다. 이제 시계 산업의 수도는 제네바, 취리히가 아니라 실리콘 밸리 일런지도 모른다. 물건에 관한 한 나는 늘 한 발짝 느린 편이었다. 모두가 전자시계를 차고 다니던 군시절에도 굳이 홍콩독수리라 불리던 쿼츠 시계를, 전역 이후에는 매..
틈틈히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한 켠에서 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해서, 조금은 아쉬움이 남아서. 이윤기 감독의 '멋진하루'는 가장 좋아하는 한국 영화 중 하나. 돌이켜보면 2000년대 후반에는 좋은 영화들이 많았다. 완성도만큼 주목받지 못해 아쉬운 영화들도 그만큼 많았고. '멋진하루'는 그래도 아직까지도 꽤나 많은 인구에 회자되는 것을 보면, 운이 좋은 작품임에 틀림없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김씨 표류기'도 참 좋아하는 작품인데, 이제서야 imdb 같은 사이트에서 뒤늦게 호평을 받는 것을 보면, 한 영화의 운명도 운칠기삼으로, 한 사람의 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고보면 예전에는 음반, DVD 같은 작은 것들에 대한 소유욕이 꽤나 있었는데, 나이를 먹으니 그마저도 없어졌다. 유튜브를 통해 ..
Look again at that dot. That's here. That's home. That's us. On it everyone you love, everyone you know, everyone you ever heard of, every human being who ever was, lived out their lives. 저 작은 점을 보라. 저 곳에 모든 것이 있다. 저 것이 우리의 고향이다. 저 것이 우리이다. 이 곳에서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이들,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이들, 당신이 들어봤을 모든 이들, 예전에 존재했던 모든 이들이 그들의 삶을 살았다. The aggregate of our joy and suffering, thousands of confident religions, ..
대부분 여러 개의 카드를 사용하는 사회인들은 카드포인트가 얼마나 되는지, 또 기한이 언제까지인지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 여신금융협회에서 잠들어있는 포인트를 통합조회하고 계좌로 환급받을 수 있을 수 있다기에 소개해본다. www.cardpoint.or.kr/← 여신금융협회 카드포인트 조회 및 계좌입금 서비스 카드포인트 통합조회 서비스란? 신용카드사에 적립된 본인 명의 카드 포인트 정보 일괄 조회 카드포인트 계좌입금 서비스란? 신용카드사에 적립된 본인 명의 카드의 '현금화 가능 포인트'를 본인 명의 계좌로 일괄입금 핵심은 본인명의의 신용카드, 휴대폰, IPIN을 통해 인증이 가능한 법인이 아닌 개인 신용카드 회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모든 포인트가 환급가능한 것은 아니고 약관에 따른 '현금화 가능 포인트..
사건은 11월달 즈음에 있었던 것 같은데, 언론에 밝혀진 것은 12월초, 전국민이 알게 된 것은 그저께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을 통해여서 였다. 나도 이번 방송을 보고 처음 이 사건에 대해 알았다. 장화홍련부터, 콩쥐팥쥐까지 못된 계모 이야기는 사실 어느 문화권이나 보편적으로 있지만, 정인이 경우에는 개인의 의지로 자발적인 입양 절차를 거쳤기에 조금 경우가 다르긴 한다. 달리보면, 양모양부의 경우는 국가 시스템이 입양 전과정에 관여를 한 셈인데, 입양 가정에 대한 낙인은 지양되어야하겠지만 양육자에 대한 사전검증이 그래도 가능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보다 세심한 면담과 검사를 통해, 양육자의 심리성향에 대해 충분히 검증한다던가, 잔존 채무 등을 면밀히 조사해서 입양을 통한 소극적 경제적 ..
일본 여행을 다녀와서도 구체적인 결혼 이야기를 하지는 않고 있었다. 막연히 내년쯤엔, 내후년쯤엔 하던 것이, 우연한 계기로 이야기가 진척이 돼서, 눈 깜짝할 사이 어느새 예비 장인어른, 장모님과의 식사 약속이 잡혀있었다. 3년여간 예비 장인어른, 장모님 모르게 만나왔던 터에, 귀한 딸내미 나이만 먹게 했다고 타박을 당하는 건 아닌지 좀 걱정도 됐었다. 첫 번째로 고민했던 것은, 식당 선정. 두 번째로는 예비 장인어른, 장모님께 우리가 함께 드릴 선물이었다. 식당 선정에 앞서서, 고민 끝에 10만원 후반대의 와인, 10만 원이 넘지 않는 선에서 와인잔 세트를 선물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우리 커플은 와인을 기념일에 빠지지 않고 곁들이는 편이지만 와인에 대해 둘 다 문외한이라, 여러 경로로 와인을 알아본 후 ..
처음으로 결혼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것은 2019년 여름 일본 여행을 앞두고 였던 것 같다. 2주년을 기념하며 의미 있는 선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작은 목걸이를 하나 준비하기로 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결혼에 대해 생각하게 됐었다. 막연히 티파니 정도면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 몰래 휴일날 백화점을 찾았는데, 생각보다 센 가격에 내심 놀랐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반일감정이 극에 달해서 일본에 가는 것조차 눈치가 보이던 시절이었다. 이런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우리는 취소 수수료를 감당할 여력이 없었고 때문에 되도록 조용히 다녀오는 것으로 합의를 본 상황이었다. 그래서 당시 여행 사진은 SNS 어디에도 올리지 않고 조용히 간직만 하고 있었는데, 스가 총리 취임 후 한일 관계가 그나마 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