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상남동, 동네 한 바퀴

창원 출신들은 애향심이 강하다. 풍요로운 9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이들이라면 더욱이. 2차 산업이 활황이었던 90년대 초중반은, 특히나 창원 경제의 전성기였다. 왕복 8차선 창원대로만큼 넓은 도로는 국내에서도 손꼽는다던가, 창원 로터리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로터리라던가, 창원터널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터널이라던가, 돌이켜보면 정말 자랑할 것이 없었구나 싶은, 그런 이야기조차도 자랑스럽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고향에 남아있는 친구들이 있지만, 그나마도 주중에는 인근의 거제나 부산, 대구에서 일하고 있다. 온전히 창원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사는 친구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나 또한 머리 크고는 서울에서 지낸 시간이 훨씬 길다. 그 사이 나도 나이를 먹었고, 도시도 변화했다. 고향을 자주 찾기는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쉽사리 그 변화를 알아보기 힘들어서, 사실은 그간 예전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줄만 알았다.

2부제를 할 정도로 학생이 많았지만, 이제는 학년당 3학급 밖에 되지 않는다



모처럼 어릴 적 뛰놀던 거리를 거닐며, 가장 크게 변화로 느껴졌던 것은 예전보다 젊은이들을 점점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 굴지의 대기업들이 생산비용 감소를 위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고, 2차 산업이 주가 되는 창원, 울산 같은 곳도 이제는 불황의 그늘이 드리웠다. 동네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부자도시들마저도, 이제는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모두 떠나고 있는 것이다. 산업구조가 2차 산업에서 3차 산업으로 옮겨가면서, 지방 공업 도시의 쇠퇴는 필연이다. 고향의 쇠락이 눈에 보여, 조금은 서글프다. 창원이 이렇다면 지방소도시는 더하겠지.

교실 대부분은 이제 학생 소리가 들리지 않는 도심 속 모교


성원주상가,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대단지 아파트 단지 내 상업시설이다



상남동의 성원주상가는 만 세대가 넘는 대단지 아파트 내 대규모 상업시설인데, 1층의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장난감 가게에서 매일 장난감을, 시간이 남으면 3층의 '심스' 수족관에서 햄스터 같은 동물들을 구경하고, 6층에 있는 '다장조피아노학원'을 가는 게 일상이었다. 장난감 가게 주인 아저씨가 아이들을 좋아하셨는지, 몇시간이고 구경만 하고 앉아있어도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않았다.


학령 인구 감소로 음악학원도, 장난감 가게도 모두 사라지고, 수족관만 남아있었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그나마 장사가 잘됐던, 1층의 '성원서점'도 온라인 서점들의 공세에 밀려 사라지고 없다. 전역 후 한 번 책을 사러 갔더니, 그 꼬마가 벌써 군대까지 갔다왔냐며 반가워했던 기억이 난다. 다들 잘 지내시는지.
유독 귀금속점이 많아져서 의아했는데, 상남동 내의 큰 귀금속 상가가 사라지고, 그 안에 입점해있던 소규모 귀금속점들이 모두 성원주상가 내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어릴 때만 해도, 장난감 가게, 철물점, 신발 가게, 서점, 음반점, 게임전문점이 별천지처럼 가득했는데, 이제는 귀금속점이 절반이상이다. 상가 나름대로도, 귀금속상들 나름대로도 자구의 방편일 것이다.


지하의 분식점, 친구들과 학원을 끝나면 매일 여기서 떡볶이를 먹곤 했다


우산과 양산을 파는 소매점. 30년 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나마 지하의 간이 음식점들은 꽤나 손님들이 많아서, 예전과 같은 활기를 띄고 있었다. 어렸을 적 LA 다저스 모자를 사고싶어 매일같이 구경갔던 모자가게도 여전히 남아있었다. 아마 크게 예전처럼 재미를 보긴 힘들 것이다. 어릴 적만 해도 우산, 모자 같은 것은 이런 잡화점을 통하지 않으면 사기 힘들었다. 요즘은 마트와 편의점을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하지만.

도서대여점 '가리온시네마'가 있던 자리, 이제는 김밥집으로 바뀌었다



학교 가는 길의 도서대여점 '가리온시네마'도 사라지고 없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05년만 하더라도, 도서대여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었는데, 웹툰의 전성기가 열리면서, 비디오가 그랬고 DVD가 그랬듯, 이제는 만화대여점도 사양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도서대여점이 사라진 자리의 김밥집을 보면서, 15년이란 시간은 한 산업의 생사고락 주기만큼이나 긴 세월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이 생기면 고향을 찾기는 더 힘들어질 것같다. 물론 앞으로 나는 어떤 거리를 사랑하게 될 것이고, 먼 훗날 태어난 나의 아이가 그 곳을 고향처럼 느끼며 살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은 첨단의 속도로 변화하는 서울보다 내가 나고 자란 창원이 좋다. 어린 시절의 나를 따뜻하게 품어준 이 도시가 다시금 힘을 내서, 보다 더 번영했으면 좋겠다. 그 번영으로 인해 내 고향을 지키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풍요 속에서 행복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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