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포즈, 롯폰기 모리타워

처음으로 결혼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것은 2019년 여름 일본 여행을 앞두고 였던 것 같다. 2주년을 기념하며 의미 있는 선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작은 목걸이를 하나 준비하기로 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결혼에 대해 생각하게 됐었다. 막연히 티파니 정도면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 몰래 휴일날 백화점을 찾았는데, 생각보다 센 가격에 내심 놀랐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반일감정이 극에 달해서 일본에 가는 것조차 눈치가 보이던 시절이었다. 이런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우리는 취소 수수료를 감당할 여력이 없었고 때문에 되도록 조용히 다녀오는 것으로 합의를 본 상황이었다. 그래서 당시 여행 사진은 SNS 어디에도 올리지 않고 조용히 간직만 하고 있었는데, 스가 총리 취임 후 한일 관계가 그나마 화해 무드로 들어서는 틈을 타 결혼 준비과정을 기록해둘 겸 몇 장 올려보기로 한다.

롯폰기에서 묶었던 호텔, 도쿄타워가 잘보였다



도쿄는 사실 우리 커플이 모두 방문해 본 적이 있는 여행지라, 롯폰기에 숙소를 잡고 그 주변 위주로 도심 관광을 했다. 오모테산도, 하라주쿠를 비롯한 신주쿠 일대, 일본에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일하고 있던 친구에게 익히 들었던 키치조지를 갔었다. 신주쿠는 워낙에 유명한 관광지이고, 키치조지는 우리나라의 상수역 일대 같은 분위기가 났다. 이노카시라 연못 일대로는 키치적 감성이 듬뿍 묻어나는 오픈마켓이 열리고, 골목 곳곳에는 다양한 맛집이 있었다.

오모테산도에서 갔던 허브티 전문점 Urth Caffe, LA에서 유명한 체인인데 도쿄에도 지점이 있었다


킬빌 촬영지로 유명한 긴파치 롯폰기점, '코다차야'와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


평소에는 외국인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지만, 우리가 간 날은 조용했다



내가 골랐던 목걸이는 티파니 인터락킹(Inter Locking) 목걸이로, 두개의 링이 빠지지 않도록 엮어있는 디자인이다. 연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디자인이라고 했다. 3박 4일의 일정에서 마지막 날 밤이 마침 우리의 2주년이라, 유명한 야경명소로 오다이바의 Fish Bank Tokyo를 미리 알아보았는데, 예약이 불가했고, 그나마 예약 가능한 좌석은 야경이 보이지 않는 통로쪽 테이블 뿐이었다.


그래서 대안으로 롯폰기 모리타워 전망대에 칵테일 바를 선택했고, 그 곳에서 도쿄의 야경을 배경으로 준비한 목걸이를 선물로 줬다.

모리타워에서, 우리의 2주년 기념 선물


모리타워 전망대에 위치한 칵테일 바 겸 다이닝펍


비가 온 자정 무렵 도쿄의 야경



결혼에 대해 사실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막연히 이맘 때를 즈음해서, '결혼을 한다면 이 친구와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물론 이 때까지만 해도 어떤 구체적인 계획도 없었기에, 프로포즈 멘트도 민숭맨숭한 날 것 그대로의 내 마음을 솔직하게 전했었다.(그래서 그 이후로 이 프로포즈는 무효라는 얘기를 수차례 했지만)

출국 전 들렀던 호텔 1층의 '스트리머 에스프레소', 애플의 수리점을 겸하고 있는 독특한 컨셉의 카페였다



비 온 뒤 이시카시라 호수에서 풍겨오던 조금은 비린 듯했던 저녁 공기와, 롯폰기 모리타워를 둘러싸고 있던 밤 안개와 도시의 야경, 이른 오전의 츠키지 어시장 경매상들의 활기까지. 지금도 기억나는 이 모든 소중한 순간들을 기점으로 좌충우돌 우리 커플의 결혼준비는 시작되었다.


도쿄는 7번째여서 모든게 익숙했지만, 코로나 19 이전에 마지막으로 함께 떠났던 여행지라 지금도 롯폰기 거리는 내게 조금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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