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뵌 장인어른, 장모님

일본 여행을 다녀와서도 구체적인 결혼 이야기를 하지는 않고 있었다. 막연히 내년쯤엔, 내후년쯤엔 하던 것이, 우연한 계기로 이야기가 진척이 돼서, 눈 깜짝할 사이 어느새 예비 장인어른, 장모님과의 식사 약속이 잡혀있었다. 3년여간 예비 장인어른, 장모님 모르게 만나왔던 터에, 귀한 딸내미 나이만 먹게 했다고 타박을 당하는 건 아닌지 좀 걱정도 됐었다.


첫 번째로 고민했던 것은, 식당 선정. 두 번째로는 예비 장인어른, 장모님께 우리가 함께 드릴 선물이었다.


식당 선정에 앞서서, 고민 끝에 10만원 후반대의 와인, 10만 원이 넘지 않는 선에서 와인잔 세트를 선물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우리 커플은 와인을 기념일에 빠지지 않고 곁들이는 편이지만 와인에 대해 둘 다 문외한이라, 여러 경로로 와인을 알아본 후 직장에서 가까운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식품코너에 위치한 '와인하우스'를 방문했다.(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와인하우스'는 지하 1층 중앙 에스컬레이터에 위치)


와인을 고른 이유는, 첫째로 여자친구네 가족은 가족 행사에 늘 술을 곁들인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고, 둘째로는 우리도 술을 좋아하며, 곧 그 행사 자리에 우리가 함께 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비싼 와인을 먹을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또 한편으로는, 예전부터 봐야지 봐야지하고 미뤄뒀던 리들리 스콧의 "어느 멋진 날"의 여운이 생각보다 오래가기도 했었다. 시종일관 영화를 관통하는, 마치 구도와도 같은 와인에 대한 철학, 너무도 상투적이어서 더 깊이 마음 속에서 울리는 줄거리, 무엇보다 영화계에서 손꼽히는 비주얼리스트가 그려낸 남프랑스 시골마을의 정취가 무척 아름다웠다. 거장이 연대기의 말미에 쉼표처럼 찍을 영화로 만들었을 법도 한데, 그렇다기에는 만듦새가 너무도 훌륭하다고나 할까.

'어느 멋진 순간'(A good year, Ridley Scott, 2006)  출처 : chewell.org



때문에 애초부터 직원에게 부르고뉴 와인을 추천해달라 부탁했고, 최종 후보로 오른 것이 알록스 코르통, Aloxe-Corton, 2015)과 샤또 드 샤미레 메르뀌레(Chateau de Chamirey mercurey, 2016)였는데, 고민 끝에 고른 와인이 알록스 코르통(Aloxe-Corton, 2015). 알록스 코르통은 부르고뉴 인근의 지명이고, 알록스 코르통 지역은 부르고뉴 지역에서 그랑 크뤼(Grand cru) 등급의 적포도주 산지라고 한다.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부르고뉴 와인이라고 이해하면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우리가 선택한 Aloxe Corton, 2015



참고로 그랑 크뤼(Grand cru) 등급은 부르고뉴 지방의 와인 중에서는 우수한 등급의 와인이기는 하지만, 최고 수준의 등급은 아니라고 한다. 비싼 와인이라 해서 꼭 내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지만, 처음으로 예비 장인어른, 장모님을 뵙는 자리인 만큼 조금 무리를 했다. 그랑 크뤼(Grand cru) 등급의 와인은 기본 가격대가 10만원 후반으로, 자주 접하기엔 가격이 꽤 센 편이다.


함께 고른 와인잔으로는 리델사의 40주년 기념 와인잔 세트였는데, 당시 할인행사 중이었고, 매장 직원이 우리가 고른 와인에 잘 어울리는 와인잔은 따로 있다며 추천을 하기에 선택했다. 와인과 와인잔도 궁합이 중요하다고 한다. 와인잔의 형태에 따라 보울을 부딪힐 때 나는 공명음을 시청했는데 각각의 와인잔의 공명음이 모두 다르긴 했다. 어떤 와인이 담겼는지에 따라서도 다르다고 했는데, 내심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걸 누가 알까 싶었다.

리델의 40주년 기념 와인잔 셋트



식당은 고민 끝에 강남역 인근의 중식당 중 인근에 여러 체인이 있어 실패할 확률이 낮은 일일향으로 정했다. 사실 내 친구들도 자주 일일향에서 모임을 하기도 해서 익숙하기도 했고, 먼저 결혼한 처제 부부의 첫 인사 자리도 여기였다기에 소소한 전통 하나쯤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결국 우리가 선택한 일일향 강남 6점은 코로나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영업 종료) 일일향은 어향동고와 전가복이 맛있고, 식사자리에서는 코스가 아닌 단품요리로 시켰다.

지금은 영업종료한 일일향 강남 6호점



여자 친구가 사전에 예비 장인어른께서 제부를 면접하듯 물었다기에 내심 걱정도 했지만, 막상 직접 뵙고 이야기를 나눠보니 예비 장인어른, 장모님 모두 우리 부모님과는 또 다른 결의 따뜻함이 있으셨다. 살아온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어느덧 저녁은 깊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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