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은 재능있는 뮤지션이다. 비록 완숙에 접어든 30대 내내 표절시비에 시달렸다고는해도. 여전히 수십명의 뮤지션들의 범작 수백곡을 갖다대어도 20살 김현철의 '춘천가는 기차' 한 곡에 미치지 못한다. 김현철은 수많은 논란을 떠나, 분면 재능있는 뮤지션이다. 외국의 유행을 차용하는 것만으로도 파격이었던 시절이었다지만, 멜로디가 아닌 곡의 이미지를 갖다썼다는 항변도 그럴싸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30대의 김현철은 실망스러웠다. 테이프가 닲도록 들었던 18번들이 표절 의심곡이란 이야기를 처음 들어었을 때의 황당함이란. 유튜브를 통해 80년대 일본의 시티팝이 재조명을 받자, 자연스레 우리 나라에도 세련된 도시감성을 표현하는 시티팝 키드가 있었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알게되었다. 대놓고 시티팝을 표방한 11집의 ..
그가 남긴 모든 곡을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몇몇 곡은 삶을 관통하며, 플레이리스트의 공백기가 없다. 신해철을 상징하는 곡이라하면, 수많은 명곡들 중에서도 특히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를 뽑겠다. 때때로 보여지는 자기 모순적 발언들을 보며 왜 밑천 갉아먹으며 사서 고생을 할까싶었다. 하지만 온갖 비난의 목소리에도 흔들리지 않는 대쪽같은 소신만은 충분히 멋있었는데, 적어도 내 기억 속에 그는, 사회를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행동하는 지성인이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야성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비정상회담에서 그의 행복론을 듣고 많은 감명을 받았던게 불과 몇 년전이다. 그가 떠났따는 속보를 클릭하는 순간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유독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아마 저녁 8시경에 야구를 보다가 그의 부고 소식을 ..
이사 후 짐정리를 하다가 문득. 먼지 쌓인 CD들을 보았다. 간혹 좋아하는 음악가의 CD를 한 두장 사모으는 수준이었지만, 이마저도 이제는 처치 곤란이다. 3천원을 간신히 모아 만화책을 산 후 포장 비닐을 뜯을 때의 설레임. 몇끼를 굶은 돈으로 신보 CD를 사서 첫 트랙을 들을 때의 즐거움. 모든게 부족했기 때문에 더 만족스러웠다. 예전에는 그래도 이백장은 넘었던 것 같은데 주변에 나눠주고, 또 어떤 것은 팔고하다보니 남은 게 그리 많지는 않다. 그 때 섵불리 팔아버린 CD 중에는 브로콜리 너마저 1집같은 지금은 구할 수도 없는 음반들도 꽤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 다시보니 몇곱절로 가격이 뛰었다. 힙합 CD들도 오버클래스의 콜라쥬같이 소장가치 있다 생각되는 것을 빼고는 일본으로 이민간 친구에게 몽땅 줘버..
유튜브에서 오래 전 폐지된 예능프로그램 '짝'의 클립 영상을 봤다. '짝'은 짝짓기라는 포맷을 차치하고서라도 다양한 인간군상의 민낯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프로그램이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출연자는 짝에서도 레전드라 평가받는 애정촌 10기 남자 6호 형님으로, 언뜻 보기에도 인간미가 넘치다 못해 솟구치는 분이시다. 그 형님이 한 말씀 중 인상깊은 구절이 있다. 남자 6호의 직업은 소나 말과 같은 산업동물을 진료하는 대동물 수의사였는데, 인터뷰 곳곳에서 느껴지는 동물에 대한 애정과 직업적 소명의식 또한 감동적이었지만, 특히 경제논리를 언급한 대목에서는 동물과의 당시 내 상황과 관련해 특히 눈이 갔다. 요지는 이렇다. "수많은 가축들이 경제학적 논리에 의해 죽어갑니다. 애완동물과는 달리..
언젠가 강신주 교수가 라디오방송에서 멘토라는 인간들이 홀로서기를 방해하고 청춘을 착취한다'며, 오히려 '힐링보다 스탠딩이 필요한 시대'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아침에 자전거를 타며 라디오를 듣던 시절이었으니 아마도 손석희가 MBC에 있던 시절의 시선집중이 아니었나 싶다. 또 비슷한 맥락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김난도 교수의 책을 두고, '애들 아프게 한 게 누군데 그걸 또 처방전이랍시고 돈까지 받고서 팔아먹냐'는 변영주 감독의 인터뷰가 있기도 했다. 시대의 과도기였던 것 같다. 스님, 욕쟁이 할머니, 자연인, 센 언니 등 유행을 타고 다양한 개성의 자칭타칭 멘토들이 처방전을 판매했다. 그렇게나 스스로 멘토를 자청하던 이들이 이제 와서는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아볼 수가 없다. 지식의 밑천이 드..
대학생 시절엔 꼬박꼬박 신문을 구독했었다. 열독했다면 지금보다 나은 삶을 일궈냈을까. 나는 말그대로 말꼭지만 주루룩 훑어보는 말그대로 얼치기 구독자였다. 내가 선택한 신문은 한국일보였는데, 그 당시 한국일보의 특징이라면 한 지면 내에서도 논조가 극과 극을 달릴 정도로 다양성이 공존했다는 것이다. 요즘도 그러냐하면 글쎄. 당시 오피니언 파트의 작은 지면을 빌어 정일근 시인의 '길 위에의 이야기'라는 에세이가 실렸었다. 주로 어느 철에 물메기의 맛이 좋더라하는 짧은 단상들이었는데, 한 날은 원양어선을 타는 젊은 시인 이재성군의 이야기가 실렸다. 정일근 시인은 내가 잘아는 우리 지역 대학의 국문학과 교수이고, 그 학과에는 내 고교동창인 이재성이라는 친구가 분명히 다니고 있던 참이었다. "갓 등단한 젊은 시인 ..
"넝쿨처럼 너를 향하는 마음 이젠 어쩔 수 없어 등불을 켜고 달래보아도 시간만 흘러가네" 신촌블루스의 아쉬움. 이런 가사들은 오히려 촌스러워서 더 좋다. 옛 노래, 옛 가사.
중학생 때 좋아하던 펑크밴드는 아직도 음악을 하고 있다. 통장잔액이 320원 밖에 없어도, 집안 반대로 부서진 기타 값이 차 한대 값이라도 음악을 한다던 서른 줄의 김재국은, 어느 덧 쉰살이 가까워오는 지금까지도 음악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 사이 타카피는 탑밴드 경연에도 나오고, 프로야구팬 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이들이 없을만큼 유명해졌지만, 곤궁이야 쉽게 나아졌을까. '수원지방법원'이라는 노래가 자전적 이야기라는 걸 보면, 잘 모르겠다. 프로야구 중계에서 수도 없이 들었던 '치고 달려라'. 덕분에 많은 이들이 타카피를 알게 되었을테지만, 그들의 보석같은 곡들을 찾아듣진 않았을 것이다. 타카피의 음악은 굳이 장르를 떠나서도 멜로디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삶의 내공이 충만한 이라면, 그 속의 삶들에서 진한 ..
한 인간은 권력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을 배움으로써, 즉 불복종 행위를 통해 자유로와질 수 있다. 불복종이 자유를 위한 조건이라면 동시에 자유 또한 불복종을 위한 조건이다. 만약 자유를 두려워한다면 감히 '아니오'라고 말할 수 없을 뿐더러 불복종할 용기도 가질 수 없게 된다. 사실 자유와 불복종의 능력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따라서 자유를 외치는 어떠한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체제도 불복종을 허락하지 않는 경우에는 결단코 진리를 말할 수 없다. -Erich Seligmann Fromm- 월가의 황소 불알을 만지기 위해 오늘도 사람들은 줄을 서고 있다. 탐욕은 인간의 본질이다. 불복종을 알지 못하면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다는 데서, 안온한 일상 가운데서도 가끔은 죽비를 두드려줄 누군가가 필요할 뿐..
20대를 반추해보면, 친구놈들 중에는 고시를 준비하던 서울대생도 있었고, 형편이 어려워 먼저 사회로 뛰어든 친구도 있었다. 벌써 굴지의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도 있었고,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전역 후에 다시 학교를 간 친구도 있었다. 뒤늦게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군인도, 어쩌다보니 애아빠도 있었다. 뭐 20대란 대개 학교를 다니고, 가끔 돈을 벌고, 한 번쯤은 어디론가 떠날 수 있는, 그런 나이가 아니었나 한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교과서로 세상을 배웠다. 그 때 우리가 본 교과서 속 세상은, 아득한 별천지같은 것이었고, 우리의 시야는 결코 칠판의 직경을 넘지 못했다. 시험을 치르고나면 세상이 바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철저히 당사자들만의 이야기였다. 변한 건 오히려 우리였다. 아마 ..
거실 책장 한 켠에는 대학생 시절의 내가 박제되어 있다. 서른줄을 훌쩍 넘긴 내겐 이제 책상이 없다. 아직도 영국에서, 미국에서, 먹물노릇해볼 거라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지만, 이제는 식탁에서 책을 읽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편한 처지다. 그렇게 속편히 사는 놈들을 보며 농반진반 혀를 끌끌차는 지경에 이른 것을 보면, 기실 나 또한 생활인이 되었나보다. 고종석, 황현산의 평론집들을 가끔 꺼내서 읽곤 한다. 다시 읽어도 고종석의 평론들은 날카로우면서도, 한편으로 따뜻함을 잃지 않아서 좋다. 황현산의 평론집은 문장 하나하나가 수려하고, 공감을 자아낸다. 시인은 태어나고 산문가는 만들어지는 것이라지만, 그들의 칼럼이나 비평을 읽다보면 이 정도 수준의 산문가는 사실 타고나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에 이른다. 고종석..
대중문화의 힘은 공감에 있다. 고급문화로서의 순수예술이 고고하게 ‘난 당신들과 다르다’를 외친다면, 대중문화는 ‘당신들도 나와 같아.’를 정면에 내세움으로서 문화수용층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최근 ‘Chick Lit'이라고 일컬어지는, 젊은 여성들의 현실적 고민을 다룬 매체들이 주류문화의 한 부분으로 등장하였다. 대중문화의 수용자적 측면에서,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도 젊은 여성들이 기성문화의 주류세력으로 편입되었다는 반증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 문화, 경제 다 방면에서의 여권신장은 문화적으로도 다양한 변화를 야기하였다. 칙릿류 소설 영화가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요즘이지만, 그 시작은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기록적 흥행으로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 30대의 노처녀를 정면에 내세운 ‘브리짓 존스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