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내가 본 사람 중에는 가장 농구 실력이 빼어났던 사람. 호승심이 강해서 사고도 많이 치고 다녔고, 한동안은 도박에 빠져 지내며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유독 코비 브라이언트를 좋아했던 형. 그렇게나 좋아하던 코비 브라이언트보다 먼저 세상을 뜰 줄이야. 소식을 듣고선 한동안 현실감이 없었다. 이런 저런 사연들로 요절한 지인들이 있었지만, 형처럼 가까운 이가 죽은 적은 처음이었다. 함께 가보자 했던 러커파크. 본고장의 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더 높이 뛸 수 있을거라나. 결국에는 나 혼자 가보았다. 형이 가장 좋아하던 코비 브라이언트가 헬기 사고로 죽은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20년의 새봄을 앞둔 겨울이었다. 이제는 코비도 형도 이 세상에 없다. 다가오는 봄에는 그 형이 잠든 창원 상복공..
자연 다큐멘터리 PD 박수용의 늙은 시베리아 호랑이 '꼬리'에 대한 관찰 추적기. 시베리아 호랑이를 다룬 다큐를 즐겨 보는데, 책으로 읽기는 또 처음이다. '한 생명에 대한 모든 기록'이라 표지에는 적혀있다. 자세히는 한 생명의 끝에 대한 기록이라 해야 옳다. 문단의 호흡이 조금 길다. 길목마다 위장텐트를 치고, 그들에게는 낯설었을 쇠붙이들을 땅 속에 파묻은 채, 작가 또한 그렇게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자연 논픽션을 책으로 읽는 것은 낯설다. 아직 반도 읽지 못했지만, 행간 곳곳에 이 땅에 마땅히 머물러야했을 존재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느껴진다. 꼬리에 대한사진이 더 많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시베리아의 왕대는 한반도 면적 그 이상을 호령하며 살아간다니 어쩔 수 없다. 그 ..
노라 애프런 감독의 다른 영화들은 진작에 보았다. 때문에, 이 감독의 영화에 영화적 깊이나 이야기의 완성도 같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이 영화를 이제서야 굳이 찾아서본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톰 행크스의 멜로영화라는 점, 90년대의 풍요로운 미국 대도시의 풍경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는 점. 이 두가지 이유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하다. 오히려 다른 모든 단점들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한창 '헬조선' 논쟁이 불을 뿜던 2016년에도 재개봉된 것을 보면, '90년대 미국 코미디'는 이제는 하나의 장르가 된 듯한 느낌. 대략적인 줄거리는 아내와 사별한 샘의 아들 조나가, '시애틀의 잠 못이루는 사람' 이라는 이름으로 아버지의 사연을 라디오 방송국에 소개하고, 이를..
아쉬움과 설레임이 병존하는, 연중 가장 시간이 빨리 흐르는 달. 여느 때 같았다면 송년의 소회로 술잔들을 채우곤 하였을 시기이지만, 그마저도 어렵게 되었다. 다시 거리의 사람들은 귀가는 빨라지고, 상인들의 주름은 더 깊게 패일 것이다. 12월에는 운동을 꼭 등록해야지. 또, 영어 공부를 꾸준히 다시 할 것이다. 대학생 시절부터 늘 다짐하지만 쉽지 않다. 올해 안에 관성을 붙여 내년에는 중단없이 계속 공부를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민법도 시간이 나는 틈틈히 볼 것이다. 살아가다보니 법률의 총체도, 공법의 토대도 어쩔 수 없이 사법이라는 생각. 한국일보 구독신청을 했다. 돌이켜보면 신문을 가장 열심히 읽었던 것은 고등학생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그 시절만큼 시간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꼭지라도 꼭 챙겨보아야..
부활을 좋아하던 내 중학교 시절 친구, 경휘. 노래방에 가면 늘 부활의 7집에 수록된 '안녕'을 불렀다. 지금 생각해도 그럴싸하게 따라했었다. 그 친구는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했고, 1년 남짓 다니던 기능대학을 중퇴하고 10여년전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다른 두 경험 사이에 한 해 한 해 벽이 쌓이더니, 어느샌가 연락이 끊기고 멀어졌다. 중학생 시절에도 그 친구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으리라 막연히 짐작은 했었지만, 결혼 청첩장을 받으며 나눴던 대화를 통해를 역시나 그 짐작이 사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부활의 노래를 들을 때면 늘, 어느 새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건실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그 친구 생각이 났다. 부활의 노래를 관통하는 특유의 서정 탓인가. 오늘은 모처럼 겨울비가 내려 부활의 '가..
인천 흉기 난동 사건과 관련해, 세간이 시끄럽다. 한 쪽에서는 출동경찰관 개인의 무능에서 비롯된 조직 구성원의 일탈을, 또 다른 한편에서는 경찰관의 적극적인 무기 사용을 꺼리게 만드는 사회적 시스템을 지적한다. 실탄은 커녕 공포탄도 발포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권총을 꺼내어 대치조차 하지 못하고 현장을 이탈한 이번 사건에서 왜 굳이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이야기나 나오는지는 의문이다. 차라리 여경 무용론은 일견 상황에라도 들어맞기에 논의의 필요성이나마 있어보였지만, 함께 출동한 19년차 베테랑 남경 또한 도대체 이해되지 않는 상황 대응을 한 것이 밝혀지자 이내 수그러들었다. 경찰 내부적으로는 무기사용으로 인한 면책규정을 신설함으로서, '주위 사정을 합리적으로 판단'한 적극적 무기 사용을 허용해달라는 취지의 주..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다(검찰청법 제4조). 변호사는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한다(변호사법 제1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헌법 제103조) 흔히들 법조 삼륜이라는 말을 한다. 판사, 검사, 변호사를 바퀴에 비유한 것인데, 공익을 대표하고, 인권을 옹호하며, 양심의 길을 따라 그 바퀴는 굴러간다. 가끔은 삐걱대기도 하지만 우리는 모두 믿고 있다. 결국 그 바퀴는 바른 길을 향해 갈 것이라는 것을. 대법원장이 구속된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다. 대법원장이 새파랗게 어린 후배 판사에게 영장 실질 심사를 받는 광경은, 참담하면서도 제헌 70돌을 넘은 우리 나라 법치의 성숙도를 보여주었다. 검사와 변호사에 대해서는 그간 국민들의 믿음이 그리 크지 ..
그 친구는 언제나 성실했다. 노력에 비해 성적이 잘 나오는 편은 아니었지만, 지치지 않고 늘 우직하게 공부했기에, 유독 우등생이 많았던 우리 학년에서도 그 친구는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다. 본디 좋은 머리를 타고났던, 최상위권 친구들 몇몇은 자기네의 몇곱절을 노력해도 늘 제자리 걸음인 그 친구를 비웃곤했다. 그 친구는 나태해지려 할 때마다 늘 모멸감을 되새김질하며 절치부심했다. 아마도 결과로써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위해 어금니를 꽉 깨물었으리라.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그 친구의 올곧은 성정은, 열등감을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게 하는 뿌리였다. 정글같던 사춘기 수컷들의 세계에서도 그 친구는 비뚫어지지도, 꺾이지도 않고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살았다. 하지만 유독 간이 작아 시험장..
평소 드라마를 잘 보지 않지만, 그나마 챙겨보는 드라마가 리얼리즘 수사물이다. 조디악, 더 와이어 같은 극 전개과정에서 절정이 생략된 듯한 작품들. 무미건조해 졸음이 쏟아져도 꾸역꾸역 참으며 보는 묘미가 있다. 트루 디텍티브는 미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있을만한 작품이다. 우디 해럴슨과 매튜 매커너히가 주연을 맡았고, 이들의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틈틈히 시즌 1의 3화까지 보았다. 시종일관 화면 속에 내려앉은 농무는 쇠락해가는 루이지애나의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레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한다. 루이지애나라하면 본디 프랑스 땅이었고, 주도 뉴올리언즈는 재즈가 유명하며, NBA선수 칼 말론의 고향이라는 것 정도 밖에 몰랐는데, 이제는 꽤나 그 풍경이 익숙해졌다. 살인사..
한 번은 직장에 대한양궁협회 기술위원장이 강연을 온 적이 있다. 강연 주제는 '원칙을 지키는 삶'이었는데, 골자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당장의 손해를 가져올 수는 있을 지언정, 결국에는 모두에게 이득을 가져다준다는 것이었다. 강연 중 인상깊었던 이야기가, 바로 양궁 국가대표 최현주에 대한 이야기이다. 선발전에서는 최정상의 기량을 보여주었지만, 정작 올림픽을 앞두고는 깊은 슬럼프에 빠진 탓에, 일각에서 대표선발을 다시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한국 양궁 대표팀에 승선하는 것이 올림픽 금메달보다 어렵다는 사실은 이미 스포츠팬 사이에서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전국체전에서는 만점을 쏘아도 금메달을 따지 못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승선이 어려운만큼, 선발전에서 가장 잘 쏜 선수를 선발한다는 ..
생애 처음으로 제주도를 찾았던 것은, 고등학교 1학년 수학여행 때였다. 지금도 잘 이해되지 않는데, 막 고등학교에 올라와 적응에도 힘겹던 3월, 전교생이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 여행을 갔었다. 아는 얼굴 하나 없이 그저 적응에 힘겨웠던 때라, 별 감흥도 없었고, 정작 들렀던 곳이 소인국테마파크 같은 업체와 계약된 관광지 위주였기에 실로 실망스러웠다. 두번째 만난 제주는 처음과 또 달랐다. 대학교 1학년 때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통해 번 돈으로, 친구들과 일주일 정도 해안도로를 자전거로 일주했었다. 첫날 하루를 빼놓고는 일주일 내내 비가 와서 고생했었지만, 비가 오면 비가 오는대로 좋았던 기억이다. 생애 처음으로 내 손으로 계획한 장기여행이었다. 그 즈음해서 장마에 접어든다는 일기예보를 한 달전부터 접하고..
테크노크라트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이야기는 과거부터 주욱 나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약간은 결이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다. 과거에는 정책 결정 과정에 있어서의 테크노크라트의 영향력이 줄어든다는 의미로 쓰였다면, 이제는 아예 테크노크라트의 등용 그 자체를 거부하는 듯한 인사 정책 기조를 의미하는 것 같다. 대통령을 도와 국가의 정책을 총괄하는 비서실장 자리를 참여연대로 대표되는 시민 사회 출신이 독점한 것만 보아도 그렇고, 때때로 전혀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각료들을 장관으로 임명해 국무회의을 구성한 점도 그렇다. 단순히 낙하산, 코드, 보은 인사가 문제가 아니라, 전문성, 자질이 문제라는 말이다. 당장 생각나는 각료들만 해도 수두룩하다. 직전 국토부 장관은 환경 운동, 노동 운동가 출신의 시민 사회 출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