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동료들과의 1박 2일의 짧은 일정으로 방문한 계곡. 올 여름은 비가 많이 좋아 어느 계곡을 가더라도 맑고 깊은 계곡물을 마음껏 볼 수 있을 듯하지만, 가뭄이 드는 해에도 이 정도 수량을 유지하는 곳으로는 서울 근교에서는 화악산 계곡이 으뜸이다. 화악산 계곡은 가평과 화천의 경계에 닿아있고, 서울에서는 안막힌다고 가정할 시 1시간 40분에서 2시간여가 걸린다. 절묘하게 퇴근시간대에 걸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용인, 원주 등 비교적 대도시임에도 좋은 풍광을 지닌 곳이 많지만, 접근성과 청정함 모두를 갖춘 곳으로 서울 근교에서는 가평만한 곳이 없다. 저녁이 되자 어떤 인공광도 없는 칠흑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문제는 그 때 부터였는데, 산속에 사오정이라도 사는지 산누에나방이 엄청나게 많았다. 산..
가고 싶은 곳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여행. 늘상 그렇듯 느긋하게 일어나, 다른 여행객들이 모두 채비를 마치고 나서야 그제사 꾸물렁거리기 시작한다. 역시나 숙소를 나섰을 땐 이미 해가 중천이었다. 그레이터 런던 안의 관광명소들은 대개 인접해있기 때문에, 걸어서도 충분히 둘러볼 수 있을 듯 했다. 핌리코에서 테임즈강 남쪽의 복스홀 지역까지 걸어보고는, 다시 웨스터민스터 지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복스홀 지역은 괜찮은 바가 많아보였는데, 아침 시간이라 역시나 방문하지는 못했다. 지나가다 빅이슈라는 노숙인 자활을 돕는 사회적 기업의 런던 사무소를 발견했는데, 당시로서는 빅이슈라는 기업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흥미로웠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빅이슈는 재능기부로 제작된 잡지를 노숙인들에게 제공, ..
코로나 이전의 일상을 언제쯤 다시 맞이할 수 있을까. 주머니 가벼운 대학생도 조금만 용기를 내면 어디로든 떠날 수 있었던 시절. 대학 졸업을 즈음해서 영국에서 워킹 홀리데이 중이었던 친구와 대화를 하던 중, 할 일 없으면 밥이나 먹으러 오라는 말에 솔깃. 생애 첫 유럽행을 10분 만에 결정했었다. 디지털의 세계도 전류가 세월처럼 흐르는 모양으로 풍화, 침식을 겪는다는데, 다행히 당시의 사진들이 온전히 잘 남아있다. 계획을 짜서 움직이는 것을 워낙에 귀찮아하고, 여행을 가면 무작정 걸어다니는 일이 부지기수라, 비행기와 숙소만 예약해놓고 모든 것은 가서 부딪히며 해결하기로 했었다. 비행기는 에어차이나에서 75만원에 인천 출발, 북경 경유, 런던 히드 공항 입국으로 발권했다. 출국은 알이탈리아 항공을 이용해 ..
친구가 기치조지 GAP 매정에서 일하고 있어 기치조지에서 만나기로 했다가, 신주쿠의 야경이 보고싶어져 급히 약속을 변경하여 신주쿠 인근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기치조지로 가서 친구와 만나, 신주쿠로 함께 이동했다. 지금껏 100번은 넘게 온 것 같은 신주쿠 임에도 길찾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신주쿠역의 출구는 모르긴 몰라도 100개 이상은 되지 않을까. 세계 최대 메갈로폴리스, 그 중에서도 가장 복잡다단한 이 곳이 나는 좋다. 돈친칸은 이미 여러 번 와봐서 익숙한 곳이다. 낮시간에는 브레이크 타임이 있고, 일요일은 휴무, 밤에는 11시까지 영업을 한다. 꽤나 구석에 위치하고 있어, 구글맵이 없으면 한참 헤맬 뻔 했다. 꽤나 오래 된 가게인데, 모르는 사이 혐한 논란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간 수차례 찾아..
친구는 일터로 출근을 하고, 아무런 계획 없는 나는 동네 산책에 나섰다. 여행을 가면 골목과 골목 사이의 삶을 살펴보는 것을 좋아한다. 길을 가다 외부에 주차된 멋진 G바겐 SUV를 보고는 무언가 이끌리듯 들어간 카페. 카페 이름은 Newbury였는데 타베로그를 찾아보니 업력이 벌써 20년 가까이 된 곳이었다. 버티는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겠지. 전체적으로 모던한 인테리어의 카페. 주인장이 외국에서 살다와서 차린 모양이다. 계속해서 영어로 분주하게 누군가 대화를 하는 모습. 토스트와 라떼는 평범한 맛이었지만, 워낙에 볕이 좋아 기분좋은 아침이었다.
초중고를 함께 나온, 친한 듯 친하지 않은 친구. 장충동에서 함께 잠시 산 적도 있고, 홍대 앞에 살 무렵엔 주말이면 다양한 고등학교 친구들이 아지트처럼 드나들었다. 졸업 후 남부럽지않은 직장에 다니다가 문득 일본어를 공부하겠다며 일본 워킹 홀리데이를 떠난다기에 당시엔 꽤나 의아해 했었다. 일본 여행의 목적은 사실 도쿄에서 고생하고 있던 이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미리 연락해두어 친구가 역까지 마중을 나왔다. 도쿄야 워낙에 부도심이 많이 발달해있지만, 기치조지가 힙스터들에게 유명한 것은 알고 있었다. 나름 우리 중엔 힙스터인지라, 기치조지 언저리에 사는 것 또한 그런 연유겠거니 했다. 친구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지로라멘이라는 라멘집이었는데, 도쿄에서는 나름 유명하다고 했다. 특징이라면 일반적인 돈코..
고등학교 졸업 후 늘 만나면 술이나 먹었지 다같이 제대로 된 여행 한 번 가본 적 없다는 한 놈의 말에 모처럼 급조된 여행. 멀리 지방 울산, 세종에서 직장 생활하는 놈들이 빠지고, 육아로 바쁜 놈들이 빠지고, 차포 떼고 나니 4명만이 남았다. 코로나 때문에 4인 이상은 모일 수도 없으니 차라리 잘된 일이다. 어디를 갈까 이야기하다 만만한 포천으로 결정했다. 포천에서도 다들 한 번쯤은 가봐서 익숙한 백운계곡에서 막걸리에 고기나 구워먹고 오자고 의견이 일치했다. 부산에서 올라오는 한 놈이 수서역에서 합류하기로 해 수서역 이마트에서 장을 보고 출발. 1시간을 좀 넘게 달려 백운계곡에 도착했다. 우리가 잡은 곳은 선 오브 글램핑이란 글램핑장이었는데, 급히 잡은 곳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시설이 좋다고 보..
이상국 시인의 라는 시에 보면 "마흔해가 넘도록/ 오징어 배를 가르는 사람들의 고향을 아는지"라는 구절이 있다. '아바이'순대에서 아바이는 할아버지의 함경도 방언이라고 했다. 6.25 때 피난민들이 쪽배를 타고 넘어왔는데, 속초에 터잡은 이유는 단지 고향이 가깝기 때문이란다. 하나 둘 그들이 사라진 지금까지도, 속초에는 겨울에도 아지랭이가 피어나는 듯, 실향의 정서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오타루에서 하루를 묵을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사실 5박 6일의 짧은 여정 중 3일은 도쿄에서 일하고 있던 친구를 만나기 위해 빼두었기에 길을 서둘렀다. 오타루에서 30분 가량 다시 기타를 타고 삿포로로 갔다. 일본의 유명한 맛집들은 대개 대형 쇼핑몰의 식당가에 분점을 둔 경우가 많았는데, 삿포로 역사 내에도 웨이팅이 긴 맛집들이 꽤 있었다. 식도락은 여행의 묘미 중 하나이지만 나에게는 해당이 없는 얘기. 그나마 결혼하고 나서야 조금씩 바뀌는 중이다. 삿포로의 권역내 인구는 약 200만 정도이다. 인구밀도가 낮은 홋카이도에서 이런 대도시가 존재한다는 것은 인구가 밀집된 홋카이도 서남부를 제외하고는 아직도 개척되지 않은 땅이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삿포로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일본의 다른 여느 도시가 그..
맑게 개인 아침 하늘을 보며, 홋카이도라 할지라도 11월초에 눈 보기는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그 생각이 틀렸음은 몇시간 뒤에 바로 알게 되었지만. 이 날은 오타루로 가보기로 했다. 비에이 후라노 같은 관광지가 유명하지만, 도시 구경을 좋아하는 나는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시간도 촉박했고. 오타루는 홋카이도 개척의 역사에 있어 하코다테와 함께 중요한 거점도시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만화 미스터 초밥왕과 영화 러브레터의 배경으로 유명한 곳이다. 짐이 없는 오늘은 한적한 소도시의 여유로움을 만끽하고자 걸어서 역까지 가기로 했다. 치토세시는 삿포로의 위성도시로 대부분의 인구가 삿포로로 출퇴근하며 경제활동을 한다. 베드타운답게 오전시간대는 거리에서 사람 찾아보기가 힘들다. 문제는 내가 또 열차를 잘못..
지금껏 가본 곳 중에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냐고 누군가 내게 물으면 나는 늘 홋카이도라고 대답한다. 겨울의 서정이 듬뿍 느껴지는 설국 홋카이도는 겨울이 특히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아리라. 여름의 홋카이도는 겨울 못지 않게 아름답다는 사실을. 홋카이도는 회사생활도 어느 정도 적응되어갈 무렵, 남아있는 연차 소진을 위해 11월초 이른 겨울에 홀로 다녀온 여행지이다. 지금은 현와이프 구여친님께서 선뜻 허락해주신 덕에, 모처럼 홀로 떠났던 여행. 함께 가는 여행이 대개 더 좋지만, 홀로 떠나는 여행은 또 다른 맛이 있다. 사진들을 다시 보다보니, 코로나 이전의 세상이 새삼 그리워진다. 도라에몽이 주머니 속에서 요술 도구를 꺼내어준다한들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항공권은 제주항공에..
장모님 지인 내외분이 민박을 치던 오두막을 빌려주셨다. 나는 처음이지만, 처가에서는 매년 초여름, 초가을녘 찾는 곳이다. 인제 스피디움 인근의 오래된 민박집인데, 이제는 주인장 내외께서 돌아가시고 자식들이 가끔 찾아 관리하는 중이란다. 시설은 사설 캠핑장에 비할 바가 못되지만, 그래도 프라이빗하게 누구의 눈치도 보지않고 캠핑을 즐길 수 있다. 조만간 시설을 정비해서 게스트하우스 등을 운영하실 계획이라는데, 그전에 많이 애용해주어야지. 서울 양양고속도로의 끔찍한 주말정체를 잘알기에 새벽 5시에 차 2대를 나눠타고 출발했다. 처제 부부, 장인장모님까지 3커플이 함께 짐을 꾸리니 차 2대로도 빠듯했다. 캠핑용품 테트리스만 10분을 넘게 한 것 같다. 다행히 차가 막히지 않아 1시간 30분 정도 달려 도착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