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임즈강, 세인트 제임시스 파크
- 여행/런던
- 2021. 7. 7.
가고 싶은 곳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여행. 늘상 그렇듯 느긋하게 일어나, 다른 여행객들이 모두 채비를 마치고 나서야 그제사 꾸물렁거리기 시작한다. 역시나 숙소를 나섰을 땐 이미 해가 중천이었다. 그레이터 런던 안의 관광명소들은 대개 인접해있기 때문에, 걸어서도 충분히 둘러볼 수 있을 듯 했다.
핌리코에서 테임즈강 남쪽의 복스홀 지역까지 걸어보고는, 다시 웨스터민스터 지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복스홀 지역은 괜찮은 바가 많아보였는데, 아침 시간이라 역시나 방문하지는 못했다. 지나가다 빅이슈라는 노숙인 자활을 돕는 사회적 기업의 런던 사무소를 발견했는데, 당시로서는 빅이슈라는 기업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흥미로웠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빅이슈는 재능기부로 제작된 잡지를 노숙인들에게 제공, 그들이 지정된 장소에서 판매하도록 하며, 그렇게 판매한 수익의 일부분을 판매한 노숙인들 스스로에게 분배한다. 대개 노숙인들은 주거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근로 의지가 있어도 쉽사리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힘든데, 이렇게 적을지언정 일정한 수익을 보장하고, 무상, 저리의 임대주택 등을 제공함으로써 노숙인의 자활을 돕는 것이다.
구글을 찾아보니 본사는 아니고, 런던의 지소 쯤되는 모양이다. 본사는 핀스베리 지역에 있다고 한다. 지소가 우리나라의 본사보다 큰 듯 했다. 참고로 빅이슈는 세계 10개국에 진출해있는데, 우리나라도 그 중 한 국가이다. 빅이슈 코리아는 기자 전원이 퇴사한 것으로 기업 목표와 후진적 조직 문화 사이의 괴리를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사회적'의 의미가 사회의 적은 아닐 터인데, 안타깝다. 런던 여행 내내 빅이슈 잡지를 판매하는 빅판(빅이슈를 판매하는 노숙인들을 빅판이라 부른다)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테임즈강 남쪽에서 바라 본, 웨스터민스터 지역 일대는 영화에서 본 그 모습 그대로 였다. 강에는 유람선들이 돌아다니고 있어, 그레이터 런던과 시티 오브 런던 지역 일대를 끊임없이 오가며 관광객들을 실어날랐다.
웨스터민스터 다리 일대는 그 유명한 런던 아이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관람차를 타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웨스터민스터 다리는 2017년 차량을 이용한 테러 사건이 일어난 지역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우리 나라에서도 관광객 한 명이 중상을 입었다. 피의자는 이슬람 극단주의를 맹신하는 런던 태생의 아랍계 남성이었다. 2008년 이후로 런던 신생아의 이름 중 무함마드가 가장 많다고 하는데, 극단의 저출산을 달리는 우리나라로서도 멀지 않아 맞이할 모습이 아닐까싶다. 이슬람을 제대로 공부한 이들은 이슬람교가 사랑과 자비의 종교라고는 하더라.
강변으로는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산책이나 조깅을 즐기는 런던 시민들이 매우 많았는데, 이렇게 청명한 하늘은 런던에서 쉽사리 보기 힘들기 때문.
우리나라의 따릉이와 비슷한 공공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많았다. 정장을 입고도 많은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사실 접이식 자전거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브롬톤'도 영국산인 것에서 알 수 있듯, 영국에서는 자전거를 이용한 출퇴근이 흔하다. 원거리인 역간 이동은 지하철을 이용하고, 역에서 회사까지, 집까지의 근거리는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이다. 비교적 자전거 도로도 우리나라보다 잘 정비되어 있어, 우리나라처럼 인도를 이용하지 않으면 목숨걸고 차도 주행을 해야하는 일은 잘 없어보였다.
열심히 걸어 이번엔 세인트 제임시스 파크에 도착했다. 숙소와 거리가 가까워 런던 여행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기도 한데, 맑게 갠 날이 이 날 뿐이라 이 날은 특히 많은 시간을 할애해 망중한을 즐겼다. 원래는 왕족들이 이용하던 왕립 공원이었는데, 1800년대부터 일반 시민들에게도 개방했다고 한다. 축구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뉴캐슬의 홈구장 세인트 제임스 파크가 더 유명하겠지만, 역사는 이 쪽이 훨씬 오래되었다.
공원 내에는 다람쥐, 거위, 오리같은 동물들이 많았다. 꽤 많은 시민들이 먹이와 모이를 주고 있었고, 동물들도 익숙한 듯 그러한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나도 간이 카페에서 프레첼과 커피를 하나 사서는, 먹이를 기대하고 다가오는 다람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조금만 걸으면 버킹엄 궁전이 나온다. 버킹엄 궁전은 1837년 이후로 실제 군주들이 생활하고 있는 왕궁이다. 영국이 입헌 군주제의 전통을 아직까지 지켜오고 있기에, 많은 관광객들이 국왕 근위병의 교대식을 보기위해 찾는 곳이다. 운이 좋으면 여왕이 관광객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모습도 볼 수 있다는데, 런던 스탠다드기가 게양되어 있으면 여왕이 왕궁 내 재실중이란 의미. 반대로 유니언 잭이 게양되어 있다면 여왕이 출타 중이라는 의미이다. 근위병 교대식은 오전 11시에 볼 수 있는데, 내가 간 시간에는 이미 교대식의 막바지 였다. 여담으로, 버킹엄궁전의 근위병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극한 직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수많은 관광객들의 눈과 귀가 그들을 향하고 있는데 어떻게 농뗑이이라도 칠 수 있을까.
유럽의 공원, 박물관 어디에서나 거리의 화가들을 볼 수 있다. 예술이 일상 속에 자연스레 스며든 모습. 진정한 문화 선진국이란 어떤 의미일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런던은 시내 곳곳에서 기념비적 인물들의 동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구글 지도에 Statue, London으로 어설픈 검색을 해보아도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인물들의 동상이 도처에 설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윈스턴 처칠, 마하트마 간디, 호레이쇼 넬슨, 올리버 크롬웰. 정처없이 걷다가, 역사 속 인물을 우연히 만나고, 그 때마다 발도 쉬어갈겸 가만히 서서 동상 속 인물의 행적에 대해 읽어보는 것도 여행의 소소한 재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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