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학교 앞 헌책방에 수학의 정석을 팔러갔었다. 혹여 누가 훔쳐갈까 싶어 써놓았던 이름만 빼면 흠잡을 곳 없는 새책이었는데도, 제 값의 반도 못받는 것이 야속해 그냥 나왔던 기억이 난다. 대학교 1학년 때 데즈카 오사무의 시리즈가 보고 싶었다. 인터넷을 보니 헌책방을 다니면 운좋게 구할 수도 있다고 했다. 당시로서는 청계천가에 헌책방이 꽤 있었는데, 어딜 가도 구할 수 없었다. 익숙하지 않은 서울지리에, 땡볕에 진창 고생만 했던 기억이다. 다시 헌책방을 찾은 것도 오년전. 졸업시기를 훌쩍 넘긴 무늬만 졸업준비생 시절이었다. 넘치는게 시간이고, 쪼들리는게 돈인지라 인근에 뿌리서점이 있어 한 번 들러본 것이다. 낡은 책 속에 있는 구구절절한 사연들이야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랴만, 눅진한 지하공..
중학생 때 좋아하던 펑크밴드는 아직도 음악을 하고 있다. 통장잔액이 320원 밖에 없어도, 집안 반대로 부서진 기타 값이 차 한대 값이라도 음악을 한다던 서른 줄의 김재국은, 어느 덧 쉰살이 가까워오는 지금까지도 음악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 사이 타카피는 탑밴드 경연에도 나오고, 프로야구팬 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이들이 없을만큼 유명해졌지만, 곤궁이야 쉽게 나아졌을까. '수원지방법원'이라는 노래가 자전적 이야기라는 걸 보면, 잘 모르겠다. 프로야구 중계에서 수도 없이 들었던 '치고 달려라'. 덕분에 많은 이들이 타카피를 알게 되었을테지만, 그들의 보석같은 곡들을 찾아듣진 않았을 것이다. 타카피의 음악은 굳이 장르를 떠나서도 멜로디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삶의 내공이 충만한 이라면, 그 속의 삶들에서 진한 ..
모처럼 다시 보게 된 고전영화. 첫 번째로 본 것은, 영화와 관련된 교양수업이었다. 물론 그런 계기가 아니라면 이토록 오래 된 고전영화는 쉽사리 눈길을 주기가 힘들다. 휴일 낮 채널을 돌리던 중 다시 보게 됐다. 스크린 속의 이탈리아에서는 가끔 비가 내렸다. 영화 속 안토니오의 얼굴에는 세파에 찌든 굵은 주름이 새겨져 있다. 아들 브루노에게도 현실은, 학교 대신 가족 수당을 위해 아버지와 함께 길을 나서야하고, 모처럼 들어간 식당에서는 자기 자신의 몫을 두고도 부잣집 아이의 몫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는 초라함으로 다가온다. 오랜 기간을 직장없이 살아온 안토니오에게 벽보 붙이는 일은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뜻대로만 된다면 1만리라는 못벌더라도 초봉으로 1200리라는 받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 돈만 잘 간수한..
한 인간은 권력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을 배움으로써, 즉 불복종 행위를 통해 자유로와질 수 있다. 불복종이 자유를 위한 조건이라면 동시에 자유 또한 불복종을 위한 조건이다. 만약 자유를 두려워한다면 감히 '아니오'라고 말할 수 없을 뿐더러 불복종할 용기도 가질 수 없게 된다. 사실 자유와 불복종의 능력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따라서 자유를 외치는 어떠한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체제도 불복종을 허락하지 않는 경우에는 결단코 진리를 말할 수 없다. -Erich Seligmann Fromm- 월가의 황소 불알을 만지기 위해 오늘도 사람들은 줄을 서고 있다. 탐욕은 인간의 본질이다. 불복종을 알지 못하면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다는 데서, 안온한 일상 가운데서도 가끔은 죽비를 두드려줄 누군가가 필요할 뿐..
20대를 반추해보면, 친구놈들 중에는 고시를 준비하던 서울대생도 있었고, 형편이 어려워 먼저 사회로 뛰어든 친구도 있었다. 벌써 굴지의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도 있었고,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전역 후에 다시 학교를 간 친구도 있었다. 뒤늦게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군인도, 어쩌다보니 애아빠도 있었다. 뭐 20대란 대개 학교를 다니고, 가끔 돈을 벌고, 한 번쯤은 어디론가 떠날 수 있는, 그런 나이가 아니었나 한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교과서로 세상을 배웠다. 그 때 우리가 본 교과서 속 세상은, 아득한 별천지같은 것이었고, 우리의 시야는 결코 칠판의 직경을 넘지 못했다. 시험을 치르고나면 세상이 바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철저히 당사자들만의 이야기였다. 변한 건 오히려 우리였다. 아마 ..
아내의 친구가 준 르쿠르제 커피잔을 주로 사용하고 있고, 내 고향집에서 가져온 레트로 맥주잔도 있지만, 아무래도 머그컵이 하나 필요할 거 같아, 구매했다. 소재는 내열유리고, 머그컵 사이즈는 400ml. 500ml는 아무래도 커피잔으로 쓰기에는 좀 클 것 같다. 무척 가볍고, 내열성도 좋다. 뜨거운 음료를 담아도 쥐고 있는 데 큰 무리가 없다. 개당 8,000원 정도면 살 수 있는듯한데, 물론 다이소 컵에 비하면 사악한 가격이지만, 그래도 오래 쓸 요량이면 저렴한 듯. 컵받침은 대개 함께 구매하는데, 우리는 우드로 선택했고 잘 고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