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돌아가는 길, 낙동강변 카페 커피명가 구지점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와, 또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생을 보낸 곳은 낙동강 유역이었다. 당연스레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생의 절반을 보낸 곳도 낙동강 유역이다. 이를테면 낙동강은 내게도 젖줄같은 강이다.

오늘도 낙동강은 유역민들의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흐른다




장인 어른도 낙동강을 보며 자랐을 것이다. 장인어른이 줄곧 의가 곧은 이들의 마을이라던, 그 집성촌의 조상들 또한 이 강을 통해 억척스런 삶을 일구어나갔으리라. 요컨대 강줄기는 집안과 집안 사이를 잇기도 한다.


아버지는 삼랑진의 물로 소의 목을 축였고, 어머니는 맥도의 물로 논에 물을 댔다. 디스토마같은 병을 알지 못했던 시절, 배가 고프면 사람들은 낙동강에서 먹을 것을 구했다. 공단도 농장도 없던 그 시절 강에는 먹을 것도 지천이었다. 외할머니가 담낭암을 앓게 된 것도 사실 그 때문은 아닐까 이제와 지레 짐작할 뿐이다. 디스토마는 특히 낙동강 유역의 식문화와 결합된 풍토병이다. 유독 민물회를 즐겨먹었던 영남 사람들이 유달리 많이 걸렸던 병. 결국 외할머니는 담낭암으로 세상을 등에 지셨다.

대구 달서구 낙동강변의 커피 명가 구지점 입구


2층에서는 낙동강의 곡류가 한 눈에 들어온다


테이크아웃 손님이 많은지 내부의 테이블은 적은 편


1층 통유리를 통해서도 낙동강이 보인다




낙동강은 시간을 품고 흐르고, 이제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세상을 떴다. 핏줄도 강처럼 시간을 품고 이어졌다. 낙동강에서 나고 자란 부모님을 뵙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들른, 아내의 할머니가 살던 마을이 멀찍이 굽어보이는 곳에서. 시간을 다시 야속하게 흘러갈 것임을 알기에, 이런 날은 돌아가는 발걸음이 유독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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